아이 2009.12.10 01:01 read.428



2009 12 07 선.


1.
물어뜯은 손톱에서는 짭짤한 육포의 맛이 났다. 아니면, 지하철에서 스쳤던 손잡이의 먼지 맛인지도, 습관처럼 넘기는 머리카락에 눌어붙은 기름일수도 있고. 아침에 먹었던 식어빠진 치즈버거의 가장자리에 찐득하게 베어나오는 케첩일수도 있고.

정체를 알수 없는 모호한 미각. 불쾌함에 가라앉은 눈이 다시한번 실내를 살핀다. 꼼꼼하게


하얀벽이 사방으로 500m씩, 녹이 스며드는 철제서랍장이 왼쪽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다. 천장에 메달린 백열등은 노란 갓에 둘러쌓여 허공에 꿈틀거리고 있다. 어스름한 각도를 만든다. 하나, 둘, 셋 맞은편 벽에 걸린 미끄덩한 모양의 시계의 초짐 또한 동일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초침의 나약한 끄트머리를 따라가는 눈, 초침이 온 몸뚱이를 부르르 떨며 전진하는 것은 1초. 딱딱한 등받이에 억지로 구겨 넣었던 마른 등이 동시에 꿈틀거린다. 그와 동시에 문이 열리고, 느릿하고 찐득하게 붙어있던 실내의 공기가 바깥으로 세어나가기 시작한다.


" 아직도 안 마셨네 "


탁자에놓인 흰 종이컵의 내용물이 줄어들지 않았음을 확인하고는 혀를 끌끌찬다. 결이 좋은 하얀 셔츠, 고향에서는 저 의상의 옷감을 신의은혜라고 불렀었다.
무릎등이 까지만 키가 자랐던 내 기억속의 아버지는 유독 신의 은혜로 만든 여름셔츠를 좋아했다. 그가 어스름한 저녁때쯤 일을 마치고 돌아와 문가에 서서 나를 부를때면 - 몹시 고즈넉하고 조금은 높은 말투로- 모래바람에 알갱이를 움키던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그의 다리에 메달렸다. 그때마다 내 얼굴을 고스란히 부비던 셔츠의 촉감 허벅지 안쪽의 농밀한 숨결이 느껴지는 부드러움 상냥한 공기가 대기에 가득 찼다. 언제까지나 메달려 있고 싶은 만큼

심해에 고스란히 가라앉은 내 기억의 일부가 저기 저 낯선이에게 이어져 있다. 마른등을 둘러싸고 있는 하얀 셔츠, 단추가 오돌토돌하게 벌려있고, 그 사이엔 피곤에 짓눌린 발그랗게 드러나있다 목선, 입술, 그리고 목덜미가 갓 도살한 소의 엉덩이 살처럼 생명있는 인간이 지니기엔 지나치게 박제적이다. 그 입술을 얇게 미끄러뜨리며 웃는 습관이 있다. 콧등, 뺨 그리고 두 눈 나를 들춰내는 이야기를 꺼내도 정작 저 눈은 아무것도 없는 황야처럼 무미건조하다. 근면하게 풀을 뜯는 소가 되어 달려야만 도달할수 있다는 저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저리 상실을 목도하는 인간이 되어 있다니 이 나라는 정말 이상한 나라다 아니 저 인간이 정말 이상한 인간인건지도



2.
골목의 가장자리에서 그와 맞닥뜨렸다. 어둠이 드리워진그늘이 굴곡진 음영이 되어 가라앉는다. 빛의 아래에 드러난 얼굴은 몹시도 아이같고, 하얗다고 생각했는데 reverse 되어있는 상황에서의 표정은 다른이 같아서 낯설었다. 알아봤으나 낯선이같은 쉬이 느낄수 없던 인간의 분열은.

"도망 안쳐? "

벽에 기대놓았던 등을 일으키며 그가 맹숭하게 묻는다. 찰캉이는 쇳소리가 그의 주머니에서 중얼중얼. 나는 아무런 생각도 의지도 없다. 도망쳐야 한다는 것 또한 불필요하다. 그의 눈은 웅크린 산짐승의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묶어놓은 듯한 결이 가지런한 배열의 빛깔의 눈이 맛이 흐리멍텅한 커피같은 연갈색의 그 눈동자가

"안가요 "
"왜? "
"필요없으니까 "

움푹 꺼져있는 왼쪽 다리. 생채기와 피곤으로 근육이 덜컹거리는 나의 왼다리가 제멋대로 그에게 다가선다. 한걸음 후각에 가까이 메꾸어지는것은 피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나의 손목을 잡았다. 손목에 급박하게 던져질 낯선 이물감을 예상하고 움츠렸다. 그러나 오히려 더운 체온이 나의 표피를 거드린다. 어딘가의 아스팔트에 긁혀 찢겨진 나의 손등이 빨갛게 축 늘어진 액체를 찔끔찔끔 토해낸다. 구강에 미치지 못한 구역질의 발현이 의식하지 않은 육신의 한 구석에서 일어난다. 그것을 감흥없이 바라보는건 나. 그러나 몹시 언짢은 표정으로 그것을 보았다.


3.

선을 넘는다 인간은 관계의 사이클을 쉽게 생각한다. 다가가면 그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다가가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던져야 한다. 먹히던, 밟히던 그건 추후의 문제다

"니가 필요해 "
"나도 알아"

피가 진득하게 베어나오는 손가락을 눈을 잔뜩 찌푸리며 망설임없이 입안에 집어넣고 빨았다. 손 끄트머리의 세포를 간지럽히는 나의 피가 그의 위장을 향해 나아간다. 나의 혈관이 아닌 타인의 소화기간을 타고 흘러간다. 나의 귀퉁이를 떼어 그에게 주었다. 선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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