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2011.05.04 01:40 read.205



계집애들 보다 더 가느다랗게 휘어진 눈매가 사납게 굳어져 버렸다. 내 귓가로 '볼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저 자식 생긴건 정말 얼척없다. 라고 투덜거리고 있는 형석의 말투에 별뜻없이 피식거리면서도, 끝까지 녀석의 눈을 쫓아가는 나의 또다른 시선은 처음부터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였다.


눈썹과 눈썹 사이를 이어있는 하얀 표피가 잔뜩 구겨져 있고, 팽팽한 긴장감이 사내들의 헐떡이는 먼지로 가득한 교실을 메우고 있었다. 비록 '저 자식'이 창가 끄트머리의 후미에 떡하니 버티고 앉아서, 맨 앞문에 엉성하게 서 있는 '다른 자식'을 노려보고 있는 거리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코 앞에서 대전을 하는것처럼, 일갈의 주먹이 내지를것 같은 긴장감이 가득하다.


" 화가 많이 났나봐. "
" 저새끼는 항상 화내. "
" 그것도 그렇구나. "


항상 화를 낸다고 쏘아붙이는 것 또한 당연하다 응수하면서도, 호기심을 버릴수 없는 나의 본능이 이제 막 한걸음을 내뻗는 앞문의 사내아이에게로 향했다.


파란색 체크무늬가 가지런하게 배열되어 있는 주머니를 손 안에 가만히 그러쥐고 있다. 다섯걸음 만에 앞줄을 지나쳐, 다시 다섯걸음 만에 창가에 닿아, 다시 여섯걸음 만에 목적지에 도달했다. 고작 방 한뼘의 거리인데, 그 여정이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케러번보다 더 고단하게 느껴지는건 아마도 저 녀석의 표정 때문이리라.

마르고, 창백한 얼굴,
쉽게 입안에 오르내리던 '부유한 집구석'이란 타이틀에 맞지 않는 굶주린 얼굴.



" 형. "


가방을 책상위에 가만히 내려놓으며 부르는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창밖을 본다.



" 어머니가 이거 갖다주라셔. "
" ..... "
" 집에 못와도. 밥은 꼭 챙겨먹어. "


마른 손가락이 가방의 끄트머리를 스친다. 살짝 빛에 반사된 하얀 손톱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더이상 다른 말도 붙이지 않고, 느릿하게 몸을 돌려 나가는 녀석을 창가에서 빠져나온 눈이 메섭게 달라붙는다. 깊은 증오가 절절하게 메달려 있는 열 여덞의 눈은 소름이 끼친다. 더이상 찡그리지도 않고, 하얗게 얼어붙어 버린 표정으로 앉아있던 그가 갑자기 의자를 걷어치우고 일어나서 책상의 가방을 손에 들었다. 그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였다.



쾅- 하는 굉음과 동시에 파란색 체크가 내용물을 터트리며 바닥을 나뒹군다. 하얀 교복셔츠의 왼쪽 어깨가 새빨갛게 물들어 가고, 끝내는 바닥의 파란천에까지 끈적한 인간의 체액에 접수당했어도. 그 광경을 구경하던 48명은, 어떤 말도 입밖으로 꺼낼수가 없었다.




" 사람말이 말같지가 않아? "



스멀스멀 베어나온 왼쪽 머리를 감싸쥐면서, 어지러운 몸을 간신히 책상에 버티고 서있던 녀석의 입에서 느릿하게 형. 이란 말이 흘러나오자 마자. 마지막에 거적대기처럼 눌러붙어있던 장막이 한꺼번에 걷어졌다.


눈이 뒤집혀 요동치는 야생동물처럼 운동화 바닥을 거칠게 내뻗으며 녀석의 등을 후려차며 달려들었다. 본능에 몸을 동그랗게 웅크린 녀석이 바닥에 쓰러지며 주변의 책걸상이 우당탕 같이 휩쓸려 넘어졌다. 커다란 운동화의 린치가 녀석의 몸 구석구석을 남김없이 짓밟는다. 커다랗게 움켜쥔 그의 주먹이 허리춤에서 미동없이 굳어져 있었다. 더 많이 베어나오는 혈액과 함께, 고깃덩이처럼 너덜너덜하게 굴러다니는 그의 손바닥에서 튀어나온 노란 명찰, 김 은우란 이름 위에 벌겋게 엄지손가락 지문 모양으로 피딱지가 엉겨붙어 있었다.








#







그저 점심시간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뻔한 사내놈들의 싸움질이였다. 문제는, 당한 상대는 학교 이사장의 '귀한 아드님'이였기 때문에 일이 커졌다는것이고. 그것을 앞세운 더 큰 문제는 그 린치의 상대가 이사장의 '또다른 귀한 아들'이라는 점이였다. 단순한 형제들의 싸움으로 치부하기엔, 횟수가 빈번하고. 또 심하게 거칠었다.


진에 대한 악명은 일대에 높았다. 악행과는 거리가 먼 얼굴을 갖고 있으나, 그 어떤 악행도 그의 앞에선 빛을 잃게 만들었다. 폭력과 또다른 범죄의 중심지엔 항상 그가 있었다. 급우를 때리고, 괴롭히고, 물품을 갈취하는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잔인하고도 무의미한 괴롭힘이 반복될수록 그의 아름다운 얼굴에 가세되는 모호한 즐거움은 그를 어떤 악마보다 더 간악한 존재로 부각시켰다.


하지만 나에겐 그와 같은 반이 되었다는건 그 소음의 피해 이외엔 별다른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의 생활 패턴을 상관하기엔 고3의 인생은 뻐근하고 벅찼고, 그들의 세상은 나와는 다른 공간이였으니까.


그러나 이 일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건, 묘하게 흔들리는 진의 구타였다. 급한 싯구에 자주 등장하는 세이렌이나 메두사 따위를 묘사할때나 쓰이는 표현처럼, 어떤것도 침투될수 없는 철옹성같은 견고함을 가진, 냉정하기만 한 그가. 이상하게도 껍질이 맞지 않는 탈을 쓰고 있는것 처럼 어색하게 팔을 휘두르는것이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일이였다. 어째서 그것이 내 눈에 띄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손등을 짓밟는 그의 하얀 운동화에 튄 김은우의 핏자국이 유달리 신경에 거슬렸을뿐.



" 내가 알바 아니지. "
" 뭔 소리냐. "
" 아냐, 헛소리. "


주변의 녀석들이 와글거리며 셔츠를 벗어던지고 체육복을 구겨 넣고 있는것을 바라보다가. 읽고있던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우가 잠에 취한 목소리로 느적느적 되묻는다. 포터블 CDP를 손에 움켜쥐고, 너른 햇빛아래서 뒹굴때 유용하게 쓰이는 후드셔츠를 잡아들었다.


" 너 체육 계속 땡땡이 치면 점수 더 안나오잖아. "
" 싫은걸 어쩌라고. "
" 진짜 희안하다. 사내새끼가 운동을 싫어하다니. "


매번 하는 소리지만, 도저히 못들어 주겠는 참견의 일장연설을 단칼에 잘라버리고, 교실을 나섰다. 후끈한 여름더위에 지독하게 베어나오는 땀 내음이 바글바글한 사내새끼들의 틈바구니에 촘촘하게 뒤섞여있다. 매번 맡는거지만 오늘은 유달리 코를 틀어막고 싶을만큼 고약하다. 뭉근한 땀이 베어나오는 목덜미가 답답해서 수돗가로 향했다.


한무리의 녀석들이 이제 막 축구를 끝냈는지, 운동장 한켠의 수돗가를 온통 점령해놓고는 우왁자왁 물싸움질에 여념이 없다. 틈바구니에서 세수를 하다간 멀쩡한 교복을 홀딱 다 젖을건 뻔한 일이라. 세수를 단념해야 했다. 목적이 사라지니 땡땡이의 행선지가 모호해져서, 잠시 그늘 아래에 서있었다.


뽀얀 먼지가 공기를 타고 흐른다. 흡입하는 호흡에 뒤섞여서 입 안에 설컹설컹 모래가 씹힌다. 눈살을 찌푸리고 입 안의 단내가 시큼한 액체를 내뱉었다. 입술을 손등으로 부비며, 혹여나 규칙딱지에 열을올리는 선도가 등장하지 않을까 하여 주변을 슬그머니 둘러봤다. 그러다, 반대편 그늘에 서 있는 교복쟁이와 눈이 마주쳤다.



" 너. "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아는 척에 오히려 그쪽이 더 당황한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다. 빈약한 몸뚱이완 다르게 도톰하게 살이 오른 눈두덩이가 반쯤은 치켜 올라가있다.


사실 이런식으로 아는 척을 할 사이가 아닌건, 나 또한 잘 알고 있는 터라. 곧장 입을 다물고 무안한 헛 기침을 했다. 두어번 놀란 눈을 깜빡이던 녀석도, 자신을 잘못 봤다 생각하고는 다시 예의 불투명하게 멍한 표정으로 운동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 은우


노란 명찰에 드문드문하게 짖이겨 있던 핏자국은 사라져 있다.



녀석의 눈이 머물고 있는 그곳. 농구골대아래에 한 무리의 인간들이 땀을 쏟아가며 몸뚱이를 부딪치고 있었다. 녀석의 시선은 그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 중에 가장 많이 빛이 흡수되어있는 인간에게 미끌어지듯 고정되어 있었다. 얇은 갈색의 머리카락이 커다랗게 몸을 뻗을때마다 허공에 흐드러지게 흩날리고 있다. 그 광경은, 생소한 동성인 내게도 간지러운 아름다움을 안겨주었다. 그 매섭고 사나운 얼굴이, 육체의 노동속에서 아무런 감정없이, 그 예의 열여덟이 가질수 있는 가장 순수한 미소를 짓고 있다는게. 너무나 아이러니 함에도 불구하고.



" 진, 디팬스! "
" 패스해! "



찬찬히 쳐다보던 녀석의 얇은 입술 끄트머리가 살짝 밀려 올라갔다. 나는 무엇에 이끌리듯 그 변환의 장면을 찬찬히 눈안에 담았다. 우글우글하게 터지는 소음 사이에서, 이명처럼 나의 귀엔 그 교실에서 내뱉던 녀석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재생되어졌다.



형.



그런데, 그 순간 농구공을 향해 뻗어가던 진의 다리가 제자리에 멈춰섰다.



허벅지 근처에 머물러있던 녀석의 주먹이 슬그머니 가슴언저리로 올라왔다. 손바닥을 펴서 왼편의 가슴을 느릿하게 어루만졌다. 얹혀버린 덩어리를 달래는것같은 그 움직임. 한번, 두번, 세번. 찬찬히 반복되는 행위는 특정한 치유의 의식처럼 경건했다. 얇게 읊조리는 입술 사이로 눅눅한 고통의 흔적이 역력했다.  



갑작스러운 경기 중단에 영문을 모르던 이들이 다가와서 진의 어깨를 툭 쳤다. 등을 지고 있기 때문에 얼굴의 표정을 볼수 없지만, 뒷모습에 베어나오는 침침한 구름에 예감이 좋지 않았다.


텁텁한 위험의 예상에 초조해진 나의 이빨이 손톱을 물어뜯었다. 뒤를 돌아보면, 분명 녀석을 발견할것이다. 그리고 황소처럼 달려들어와 녀석의 허리를 후려칠것이다. 또 그렇다면 그때처럼 바닥에 고깃덩이처럼 내쳐지게 되리라. 메마른 몸뚱이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혈흔이 흥건해질것이다.



" 야. "




이번엔 다른 해석의 여지도 없이 선명하게 내뱉는 부름에 녀석의 시선이 내게 밀려왔다. 벌겋게 달아오른 더위에 설익은 눈동자가 이상하리만큼 까맣다.


나는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녀석의 손목을 잡고 건물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2.












차가운 손목의 표피와, 땀으로 가득찬 손바닥의 온도는 적도와 남극처럼 까마득한 간극을 갖고 있었다. 꿈틀거리는 미약한 고동이 여전한 생명력을 증명한다. 그것 이외엔 모든 흐름이 죽어버린것 처럼 까맣다.



3층의 휴게실 끄트머리까지 내달리면서, 속으로 쉴세없이 내가 왜 이런짓을 해야하는건가 라는 자문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손바닥이 춥다는 기분밖에.



" 그만. "



희미한 목소리에 드디어 다리가 멈췄다. 이미 점심시간을 넘긴 복도는 인기척이 남김없이 사라져 있었다. 아무도 없는 콘크리트 벽에 미끌어지듯 녹아있는 오후의 공기가 서늘했다. 녀석은 나의 눈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내가 붙잡고 있는 손목을 가만히 비틀었다. 다른 이야기 없이 손을 풀었다.


힘없이 내려앉은 손목을 가만히 감싸쥐며 어루만졌다. 이상하게 나를 향하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씩 하나씩 녀석의 눈이 찬찬히 스쳐가는것이 느껴졌다. 긴장감이 엄습했다. 엉거주춤 뒷걸음을 치며 , 나도 모를 난감한 상황을 변명하기 위해 마른침을 삼키며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녀석은 아무런 말 없이 계단을 향해 걸어가는것이 아닌가.



" 야. "



녀석이 멈추었다. 그리고 곧장 밀려오는 후회에, 아랫입술의 껍질을 잘근잘근 씹었다.



" 너 그렇게 얻어맞고 다니다가 진짜 죽어. "



부족할거 하나 없는 집구석에서, 아마도 어떠한 위험없이 자랐을 녀석이. 대놓고 사서 '위해'를 자처하고 다닌다는게 이해할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내뱉는 오지랖이라 포장하기엔, 내 도덕심은 넓지 못했다.


이것 또한 뻔한 전개. 쉽게 만날수 없으나 한번쯤은 들어봤을한 구성. 피가 섞이지 않았어도, '형제'란 관계로 묶여질수 있는. 참으로 편리한 껍질. 녀석과 진은 그랬다. 싸구려 삼류 소설보다 더 추악하고 유치한 뒷소문이 녀석과 진의 사이를 얽혔다. 당사자들 앞에서는 거론되지 않았으나, 쉴세없이 그들의 뒤에 따라오는 '피가 섞이지 않은 형제'란 타이틀.


김은우의 아버지인 이사장이, 오랜 이혼 소송으로 김은우의 생모를 떨궈내고. 간드러지는 미모의 중국 여자로 공석을 메꾸었다는. 그런데 그 중국여자는 어느 누군가의 사이에서 낳은 사내아이를 데리고 들어왔다는. 반쪽자리 가정과 반쪽짜리 가정의 결합으로 탄생되었다는 지저분한 콩가루집안, 그 뻔한 추문들 말이다.


그다지 관심도 없던 풍문이, 어째서 이렇게 구구절절 토씨하나 빠트리지 않고 재생되어 지는지 이것 또한 이해할수 없는 나의 이상행동이다. 무안함과, 스스로도 이해할수 없는 일을 채 막지 못해 쩔쩔매고 있는 당혹함이 뒤섞이며 말 끝에 무겁게 메달려 있다.



" 니네 형 존나 괴물이잖아. "




진과 같은 반이 되고 난 후 6달동안, 쉬는 시간 사이에 찾아와서 자진해서 폭력에 몸을 내어주는 김은우의 일은 빈번했었다. 물론 처음엔 생소한 광경에 당황했던 적도 있었다. 형제의 싸움은 익숙했으나, 뒷골목 암화에 찌들어있는 형의 일방적인 발길질에 피를 토하는 동생의 순종은 낮설었으니까. 과격한 언어와, 조롱, 비난에도 녀석은 진을 찾아오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 교실의 한 구성원으로서 눈살을 찌푸리며 반복되는 광경에 어느덧 익숙해지기에 이르렀다. 특이할것 조차 없는 흐름이였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 녀석의 앞에서, 위험에 대한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녀석이 가볍게 피식거렸다.



" 괴물인 척 하는거죠. "



어깨를 으쓱이며 내뱉는 말이 생각보다 너무 자연스러웠다. 좀 더 모스부호 스러운 분절을 예상했던것도 나의 편견이였던 걸까? 녀석의 목소리는 다감하게 나긋나긋하고 선명했다.


" 괴물이 되고 싶어서 안달나긴 했는데. "
" ? "
" 못 되서 안타까운거죠. "
" 미친놈. "
" ........... "
" 그냥 무시하면 되잖아. 어차피 - "


피도 안섞였는데. 라는 말을 내뱉기 전에 냉큼 입을 닫았다. 들리지 않아도, 생각에 당황하여 어찌할바를 모르며 눈을 깜빡이는 나를 보고는 부드럽게 미소를 짓는다.



"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서. "



깍듯하게 바로 서서, 어깨와 고개를 반듯하게 굽히며 인사를 한다. 집을 떠나는 방랑자처럼 옷자락에 가득 품어있는 바깥의 공기가 녀석의 공간에 주입된다. 나는 넋이 빠진 이 처럼 아랫턱을 풀어놓고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남색의 교복쳐스깃 끄트머리에 아직 가시지 않은 핏자국이 눈에 띄었다. 이상하리만큼 가슴이 답답해졌다.


반갑지 않은 호기심이 머리를 슬그머니 처들기 시작했다.







#






" 어디갔다 온거야. "



하얗게 질린 현우가 내 팔을 붙잡고 다급하게 쏘아붙였다. 만신창이가 된채 널부러져 있는 나의 책상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 사이가 홍해처럼 허옇게 갈라져 있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내게로 덮쳤다는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렇지 않았어도, 그 옆에 다리를 꼰채 기대어 있던 사람의 얼굴이 모든것을 이야기 해주었을거다.


햇빛에 그을렸어도, 여전히 하얗고, 더위에 발갛게 붉어진 뺨이 굳게 닫힌채 내게 향해있었다. 5분의 시간을, 어떤 미동도 없이. 나를 살피는데 온통 쏟아붓고 있었다.




" 너 아까 어디갔었어. "



널부러진 책상의 다리를 무심하게 툭툭 두들기면서 내뱉는 말에는 종잡기 어려운 건조한 무게감이 있었다. 도저히 이유를 짐작할수 없는 혼란과 미친개처럼 날뛰는 이가 자신의 친구에게 위해를 가하고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수 없는 현우가 내 팔을 붙잡고 소리없는 질문을 반복한다. 하지만 나는 현우를 위해 어떤 말도 해줄수가 없었다.


색이 다른 세계였다. 남이 내게 강요하지 않고, 이탈시키지 않았던 내 세계와 이 세계의 간극은 선명했다. 그저, 그 그늘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김은우를 구경'만'했더라면, 언제나 그렇듯이 눈으로 만, 귀로 만, 관계없는 이들의 폭력과 가학을 접하면서 휴지통의 휴지를 버리듯이 가볍게 기억에서 지워버렸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것이다.


김은우의 손목을 잡아 끌었던건 내 선택이였다.


본능적으로 움츠려 있던 어깨를 담담하게 피며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 3층 음악실. "
" 거긴 왜 갔는데. "
" 그냥. "



타닥타닥 규칙적으로 까닥거리던 다리가, 날렵하게 휘둘리며 나의 복부를 가격했다. 그 재빠른 움직임과 힘에 방어가 없던 나는 한장의 종이장처럼 고통에 겨운 신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꺾인 무릎이 차가운 아스팔트위에 얹히며, 비릿한 서늘함을 전달했다. 웅성거리던 소리가 불시에 정지했다.



"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


그때의 김은우의 피가 지금은 하얗게 증발해 버린 운동화가 엎드린 내 눈앞을 환영처럼 스쳐지나가고, 내 머릿속엔 실날같은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숙이던 김은우의 새까만 정수리가 환등기처럼 반복 재생된다.


힘에 부친 머리를 들어올리며, 나를 내려다보고있는 하얀 얼굴을 바라보았다.



" 쿨럭, 아니. "



괴물이 되고싶으나 될수 없다.


그 말을 읊조리던 그 녀석의 표정이 나를 떠나가지 않는다.
선택지에서 호기심의 칼을 꺼내어, 결국 이롭지 못한 곳의 가지를 잘라버리고 말았다.


" 근데 내가 거길 간게 너한테 중요한게 아니잖아. 왜냐는 질문에 대한 답도 넌 이미 알고 있는데 굳이 할 필요도 없고. "
" ........ "
" 질문을 다시해야지. "



신음을 입안으로 삼키며, 고통의 피로감으로 무거워진 몸을 느릿하게 일으켰다. 휘청이는 몸뚱이를 다른 책상에 버티어 기대어 구부러진 어깨를 곧게 폈다. 비릿한 피맛이 입안을 감돈다. 단어 하나에 하나에 힘이 실려있다. 의외로 담담하고 건조하게 내뱉는 내 말에 진의 표정이 점점 서늘하게 굳어간다.



" 씨발새끼가, 입이 아직 살았네. "



저벅저벅, 가까이 더 가까이 나의 앞으로 다가온 진이 나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콧잔등이 맞닿을 거리에 진의 갈색 눈동자가 놓여있다. 눈썹부터 아래까지 찬찬히 훑어보는 진의 시선이 기이한 외계 생명체처럼 불쾌할만큼 서늘하다. 잠식당하고 싶이 않아 숨을 참았다. 내 호흡기가 구겨질만큼 강한 약력으로 비틀러잡은 옷을 끌어당기며 진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 한번만 더 거슬리면, 죽는다. "



얇은 교복 바지주머니의 찰랑거리는 쇳소리가 더욱 도드라지게 들려온다. 아무것도 읽을수 없는, 불쾌감조차 뭍어나오지 않는 투명한 갈색 눈동자. 그저 어떠한 시간의 공유도 없는 이가 처음 마주했다면 그 아름다움에 쉽게 마음을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한낱 껍찔에서 녹아버리게 만드는 아슬아슬한 위험이 그의 모든곳에 범람하고 있을 뿐이였다. 그것들은 내게 어떠한 기쁨도, 평화도 안겨주지 않을것이란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진의 말처럼, 손을 뻗으면 나의 손이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 그늘속에 서 있던 김은우를 데리고 도망쳤던 것일까.














3.








미친놈, 등신새끼. 진이 난자해놓은 나의 짐들을 하나씩 가슴에 주어담으며 속이 잔뜩 끓어오른 현우가 내뱉었다. 어쩌자고 저딴 개새끼를 건드린거야. 라고 묻는 말에 말 없이 어깨를 으쓱했더니, 커다란 손으로 등을 후려치며 참았던 화를 지른다. 너 큰일난거야. 이제 저새끼한테 찍혀서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 당하면서 살래? 선한 현우는 사내아이들의 싸움질에 익숙하지 않았고, 그 중심 피해자에 자신의 오랜 친구가 뒤섞이는것을 참지 못하는것 같았다. 구덩이에 빠진 나를 구출해주려는 심산으로, 이 사태의 해결을 같이 모색해야 한다고 전전긍긍한다.


분명 진이 상종못할 문제인간 이란건 알고 있지만. 하루아침에 손바닥의 먼지를 털듯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를만한 충동의 무뢰배가 아니라는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게 계속 이 사태의 이유를 캐뭍고 캐뭍는다.


이유를 정확하게 표현하라는 말에 대답을 할수 없었던건, 정말 체계적으로 단정지을 단어따위가 애초에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였다. 그저 나는 어렴풋이 그가 어떠한 부분을 침해받았기 때문에, 짐승의 본능으로 발톱을 내세웠다고 '짐작'하고 있는것이 전부일 뿐이였다.



" 이제 다 괜찮아질거야. 별거 아니니까. "



터진 코피를 틀어막는 솜이 뻣뻣하게 말라비틀어졌다.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틀어막은 솜을 빼었다. 가슴에는 여전히 쇠가 긁히는 소리가 터졌다. 현우가 주번이라 같이 가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고, 걱정스럽게 말문을 여는데 가방을 찾았다. 혼자 갈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 더더욱 수심이 깊어진다.


" 개새끼더라도, 뒷통수는 안밟는 새끼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너 얼굴 하루종이 구겨져서 아저씨처럼 주름이 한가득이야. "
" 아휴. 또라이. 너나 잘해 "



왁자함이 한바탕 휘돌고 간 교사의 현관엔 황량함이 가득했다. 먼지 바람이 뿌옇게 일어나고 있는 운동장위로, 어스름한 저녁의 해가 반쯤 걸려있었다. 손에 감아놓은 붕대를 쳐다보고, 욱신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더듬더듬 어루만졌다. 거추장스러운 몰골에 별 다른 생각이 없었으나, 아무것도 모른채 상처를 보고 황당해하고 호들갑을 털어낼 엄마가 떠오르니. 집에 가는게 망설여졌다. 차라리 현우가 끝나는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녀석을 방패막이 삼아서 집에 갈까 하는 궁리를 해본다. 어설프긴해도, 하나가 아닌 둘이 내뱉는 변명이 더 자연스레 넘어갈지도 모른다.


다시 발을 돌이켜 교실을 향해 올라가려고 하는데, 제자리를 맴도는 발이 잠시의 고민에 실려서 주저주저 걸음을 멈칫하고 있는것이 보였다. 무엇인가가 도드라지게 익숙했다.


" 지헌선배. "


또박또박, 내뱉는 나의 이름이 다른 빛깔을 가질수 있다는게 신기하다.



같은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었다는건, 이 곳에서 의미를 갖고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끝에 불려지는 이름의 주인공이 아마도 목적의 귀결점이겠지. 그 자연스러운 흐름이 나를 놀라게 한건 아니였다. 오히려 그 귀결점이 나라는 사실이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뺨에 붙여놓은 반창고 들과, 삐딱지가 엉겨붙어 미처 빨아놓지 못했던 교복 셔츠의 몰골을 하나씩 하나씩 살피던 은우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 졌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저으며, 반복테이프를 트는 플레이어처럼 읊조렸다. 괜찮아. 괜찮다고


한걸음 내딛다가, 멈칫하고는 다시 주변을 살피는 눈이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따로 설명을 해주지 않아도 될것같았다. 학교는, 바람에 실려가는 소문이 쏜살보다 빠르니까.


" 죄송해요. "
" 네가 죄송할게 뭐가 있다고. "
" 형은 나쁜 사람 아니에요. 그러니까. "


나에 대한 걱정이 아닌, 진에 대한 비호가 전제되어있는 방어자세다.
모호한 보호본능이다.



" 또라이는 맞는데, 나쁜 인간 아니란건 나도 잘 알아. "
" 다시는 이런일 안생길거에요. 다 저때문이니까. "


말을 끊는 숨이 무겁게 따라나왔다. 다시 한번 더 꼼꼼하게 주변을 살펴보더니 조금더 가까이 내 앞으로 다가온다. 손을 뻗어 나의 이마의 붕대를 만진다. 나의 얼굴에 열이 오른다. 후각을 스치는 마른 비누내음은 김은우의 것인걸까.



" 정말 죄송해요. "



한숨을 내쉬던 녀석이 주머니에서 부스럭 거리며 무언가를 꺼내 내 손에 쥐어주었다. 바스락거리는 하얀 비닐봉지를 열어보니, 붕대며, 소독약따위가 넣어있었다.


" 저 때문인거니까.. "
" 너말이야. "
" 네? "
" 지금 이거, 내가 걱정되서 그러는거야. 아님 진 때문이야? "


후미에 따라나오는 이름에 당황하는 은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 아, 난 관심없어. 다만 "


다만.


봉지를 은우의 손가락에 다시 걸어주며 웃었다. 걸쳐놓은 반창고 아래의 상처가 욱신거렸다.

겁에 질린 은우의 눈이 파랗게 변해갔다. 이상하게 피가 섞이지 않았음에도 지금의 녀석의 눈동자는 진의 그것과 몹시 흡사했다. 고깃덩이처럼 널부러진 은우을 짓밟을때 걸려있던, 쉽게 찢어질것만 같은 얇은 장막의 표피.

마치 은우는 내가 손을 뻗으면, 깊은 곳을 휘젓게 될것만 같이 위태하게 보였다. 육체적인 고통이 아닌, 단순히 특정한 존재가 은우를 사로잡고 있었다. 마치 목덜미에 걸려있는 종양처럼. 은우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는것 같다.



" 너 이러다 진짜 죽을거같다.  "



봉투를 잡고 있는 은우의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가만히 녀석의 손등을 감싸잡았다. 차가웠다. 그 그늘아래에서 잡았던 손목처럼.


땀에 눅눅하게 젖어있는 이마의 머리카락을 때어주고, 낮은 한숨을 쉬었다. 집에 가자며 은우의 어깨를 잡아 끌며 입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 또. "



입에 물고 있던 마른 담배를 바닥에 뱉으며, 계단에 너르게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키는 진과 시선이 마주쳤다.


까맣고 깊은 녀석의 눈이 흔들림없이 내게 향해있었다. 은우가 아닌 내게 온전하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가볍게 휘어지는 입꼬리를 말아 웃는 것이 마치 poe의 소설에 나오는 검은 고양이 처럼 끈적하게 섬뜩했다.


은우가 내게 잡힌 손을 빼며, 한걸음 앞서 나를 가로막으며 진의 앞에 섰다.



" 형. "



방금까지 후들거리던 어깨가, 곧게 서있다. 등을 지고 있어 보이지 않는 은우의 얼굴을 혼자 상상해본다. 다시 시작될 또 다른 부딪침과, 공격들에게서 은우은 혼자 이것들을 다 감당할수 있을지. 겁에 질려있다기보단, 그 복도에서 마주했던. 곧고 맑은 눈이리라 생각한다.


진은 무표정으로 은우를 바라본다. 같은 공간에 있으나, 나와 이들의 사이엔 보이지 않는 강이 흐르고 있다. 손을 내밀고 있지 않으나, 은우을 강하게 붙잡고 있는 진의 공기. 비집고 들어갈수 없는 그 견고한 세계가 이방인의 앞에 펼쳐져 있다.


이것이 단순한, 증오와 증오의 사이클의 결과란 것인가?
해석하게 어려운 모호한 끈적함이 나의 목덜미에 달라붙는다.


그곳에서 꺼내기 위해, 얼른 은우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러나, 나보다 더 빠르고 강한 손으로 은우의 팔을 잡아챈 진이 발갛게 햇빛이 내려오는 다른 공간으로 은우를 끌고 나가버린다. 나의 손은 허공만 휘젓다 힘없이 떨구어진다. 그저 그들이 사라진 문을 바라볼 뿐이였다. 그 어떤것도 할수 없단 아득한 무능함에 잠식된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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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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