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곡식 낱알 따위나 밀가루 먼지처럼 흩날리는 언어를 잡기 위해 종종거린다. 까만 물이 베어나오는 뻘에 두 다리가 박혀 움직이지 않는다. 피부를 미끌어지며 지나가는 연체동물들의 꾸역대는 움직임을 느끼며 세상이 지나가고 있다는것을 생각한다. 마른 공기, 습한 어스름 사이를 누비고 싶어하는 본능이 꿈틀거릴때 살아가는것에 또 한번 죄책감을 짊어진다. 번져있는 눈가를 방치한 무신경함을. 날이 선 칼날이 스칠때 닿아지던 헛한 통증에 무릎조차 꺾이지 않는다. 발가락 사이에는 뻘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솟아오른다. 오르고 올라 발등을 덮고 허리까지 차 오른다. 불을 지른다면 질척한 온기는 딱딱하게 굳어질것이다. 온전하게 움직이지 않는 토기 인형이 될 것이다.
내 어미는 나를 끓는 쇠물속에 넣었다. 맑은 종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린 여자아이를 녹여야 한다는말하던 이를 좇아서 . 그러나 이생의 나는 스스로 육신을 내던진다. 모든것이 부질없다 하는 말은 나의 말이였을까, 나뒹구는 육신을 보고 혀를 차던 누군가의 애도였을까. 나의 두발은 가느다란 뿌리를 내리는 나무 조차 될수 없다. 산소는 내 표피의 헐거운 구멍에 침투하여 미생물을 살포할것이며 그들의 증식에 나의 누추한 소유물은 기꺼이 쓰일것이리라. 이 모든것이 이렇게 한순간에 끝날줄이야, 이렇게 부질없을 줄이야.
비가 많이 쏟아지고 난 후 다음날의 하늘은 착실하게 선명하다. 한순간에 눈시울이 달아오를정도로 부신 그 빛을 간절히 갖고 싶다. 밤이 되어도, 눈을 감아도, 조각 볕 아래서 무릎을 굽히고 앉았던 그 때 그 사람처럼. 텅 빈 두팔을 가득히 벌리고 바닥에 육신을 뉘일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해방이요, 간절한 바램의 성취다. 내가 살아있음을 네가 증명해 줄수 있느냐. 상냥한 버들바람이 코끝을 스치며 귓가에 속삭인다. 이제 돌아갈수 있는 길에 접어들어 언덕을 마주하게 되었지만, 그 어떤것도 내게 생명의 나아감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2.
살아가는것은 고통의 연속이다. 유한한 세계로 부터 오는 고통을 떨치기 위해 인간은 무한한 비현실을 창조한다. 열병에 의한 화기가 정수리에 뿔처럼 솟아올라도 이불을 돌돌 말아 가슴팍을 여미며 내가 굴러가고 있는 질척한 이승을 상기한다. 상기하지 않으면 버틸수 없다. 존재하는 모든것들은 주입하지 않으면 절대 당연할수 없으니까.
이름없는 괴물이 내게 말했다. 하나를 준다면 두개를 더 줄수 있다. 이름을 가진 인간이 반문했다. 두개를 준다면 네개를 더 줄수 있는건가? 거대하고 고귀하신, 다만 이름만이 없던 괴물이 대답했다. 삼천개를 준다고 해도 네게 줄것은 두개뿐이다. 갖고 싶다면 네가 가지고 있는 한가지를 내놓아야 한다. 네게 원하는것은 그 뿐이다. 네가 원해야 하는것도 두개 여야만 한다. 다섯개를 네가 가진다고 해서, 그 하나를 잃어버린 네가 흡족할수 있을까? 너는 오백만개를 가져도 끝없이 굶주릴것이다. 내게 주어야 할 한가지를 잘라버렸기 때문에. 이름없는 괴물은 이름을 집어 삼키고, 한쪽 팔을 내어준다. 뒤뚱뒤뚱 걸어가는 뒷모습에 펄럭이는 웃음이 튀어나왔지만 웃을수가 없었다. 그 순간 너는 이곳에 있는것도 아니고 저 곳에 있는것도 아니게 되었으니까. 현실이 지옥같은 화염에 휩쌓여있어도 생명을 포기할수 없다면 차라리 보지 않는 쪽을 택하리라. 눈을 감고 거리를 걷는다. 그때만큼은 뺨으로 다가오는 바람만이 '이 세계'의 전부가 될수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