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녀의 무표정은 슬픔의 무거움이였을까 아니 그것보다 그 '슬픔'의 무게를 그다지 파악하지 못하는 그 무거웁고 무거운 '무'표정이 더 무섭고 무거운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먼지가 너무 날리는 먼지나는 인간들이 득시글한 곳에서 그녀는 살았다. 그녀는 아들을 사랑하지만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을까? 아마 사랑했겠지만 (그녀가 그 황량한 삶 속에서 선택했으니) 그녀는 사랑을 말하거나 갈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게 더 무서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 '무서운' 요소들때문에 가끔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고 고백하노라 (지나친 솔직) 그러나 그 공백의 여지는 여전히 해석하기 어려운 난제이다. (머리가 나빠서) 그녀의 아들은 결국 죽고(그래서 백석의 시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고. 도라지 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는) 그녀가 사랑한 (아 무덤덤하게 표하는 그녀에게 이 단어를 함부로 쓰고 싶지 않았다) 아니 좋아한 사람들도 하나같이 떠났다 (아 떠났다기 보단 원래부터 쓰레기같은 것들이였으나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하자) 그래서 그녀는 도망치는 역으로 달려나간건가? 아 그게 아니라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거라더라. 이래서 해석은 정도를 따르는것도 필요하다고 하는 (웃음)
2.
사진은 참고로 이 영화와 절대 관련없는 영화 시작전 A 핸드폰의 광고.
3.
'우리'가 처음으로 갔었던 인천의 C영화관.
(우리가 아직 K선배와 L후배였을때)
그곳을 2년만에 갔다. 그때는 팔랑거리는 가디건에 종종걸음치는 스물둘이였지만 지금은 스물넷. 그때는 뒷서거니 갔지만 이제는 나란히 기대어서. 그때는 떨어져서 우두커니 봤지만 이제는 손가락을 맞닿아서 같이. 그때 같이 먹었던 창가의 자리에서 K 버거를 또 다시 나누어 먹으면서. 여전히 심장이 시큰하다. 고 생각했다.
(사실 영화만큼 아니 그 보다 그 '되새김질'이 더 - )
私足
공교롭게도
2004 년 3월 26일
2006 년 3월 27일
신기해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