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06 18 苦痛論
고통이 한소쿰 가라앉고 나니, 비로소 주변의 모든것들이 인식된다. 순간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털어넣은 약물에 대한 후회, 인내하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이 노곤하게 스며들어 오며 내게 또다른 불쾌감을 선사한다.
고통을 참아내는것이 도덕적인, 절대적인 인간으로의 완성이라고 가르쳤던 제도권 교육때문에 내가 이런 후회를 기술하는건 아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숨을 쉬고 음식물을 섭취하여 생장을 유지하는 모든 사소한것들에 경외심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에 굴복하는 동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단순한 편린들로 구성된 감각에 지배되어서는 안된다. 나는 금욕주의자도 아니고, 쾌락을 비판하는 자도 아니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마음껏 누리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인정해야 한다. 인간의 욕구는 매끈한 앞면과 고통스러운 뒷면이 교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는 음식을 탐닉하는 일에서 부터, 육욕을 추구하는 일에까지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와 사고에 모두 해당한다. 내 혀끝에서 위액으로 넘어가 단위시간에 9kcal를 형성하는 밥의 단맛을 쉽게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숨가쁘게 넘어가는 고통의 시간이 '약물'에 의해 잠재되고 나서도 마치 고통이 완전히 물러난것처럼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 절제하지 못하고 과용하는건 그 사사로운 시간동안의 매커니즘을 무시하는것이다. 지나간 고통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고통을 번복시킬수 밖에 없다.
완벽한 인간의 길은 포기했어도, 나는 좀 더 덜 괴로운쪽으로 흘러가고 싶다. 그래서 절제하며 사는법을 터득하고 싶은데, 나는 성인이 되었어도 본능에 지배당하는 동물성을 제어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내게 고통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