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07 06 호흡(Der Atem) - Thomas Bernhard.
1.
병원은 삶과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를 생각하게 해주는 고통의 공간이다. 바로 이런 병원에서 외할아버지는 당신이 처한 상황과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때때로 이런 병 - 그것이 진짜 병이든 아니면 진짜 병이 아니든 - 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생각을 하도록 해준다고 했다. 그런데 가끔씩 아프지 않고는 사람들은 도저히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그러니까 그냥 저절로 그런 사색 공간 - 사색 공간이란 말할 것도 없이 병원을 일컫는다 - 에 들어가지 못하면, 인위적으로라도 그런 병원에 입원해야 된다 고 했다. 즉 그런 병들을 찾아내거나 고안해내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서라도 병원에 입원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우리들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병원뿐만은 아니라고 했다. 그건 감옥이 될 수도, 수도원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도원과 감옥은 병원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말도 했다. 지금 이렇게 병원에 입원한것도 사실은 사색 공간에 머무는 것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살아가면서 이렇게 병원에 입원해 있는 시기가 그 어떤 시기보다 자신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내가 고비를 넘긴 상태이기 때문에 이제 내 스스로도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을 사색 공간에 머무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에 걸맞게 이 기간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내 자신이 최근 들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이러한 가능성을 이용하기 시작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병자는 혜안을 가진 자이며, 그 누구도 병자보다 이 세상을 더 분명하게 보지는 못하는 법이다. (후략)
2.
우리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어간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과정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죽는다라고 말한다. 때로는 이 마지막이 끔찍스러울 정도로 길게 지연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생 동안 진행되는 죽음의 과정 중에서 마지막 단계를 우리는 죽음이라고 한다. 우리들이 죽음을 피하려고 한다는 것은 곧 계산서 지불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계산서를 받아 손에 쥐어야 할 날이 오면 우리는 자살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또 그와 동시에 아주 비열하고 치사하게 도피처를 찾는다. 우리는 모든 게 도박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에 항상 인생의 쓴맛을 느끼게 된다. 결국 마지막에는 절망만이 남을 뿐이며 그 결과는 죽음의 방에서 맞이하게 될 죽음이다. 모든 것은 사기에 불과했다. 우리의 삶 전체는 정확히 말하면 사건으로 점철된 초라한 달력과 다를 바 없는데, 그 마지막 부분이 갈기갈기 ㅉㅣㅅ겨진 달력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