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아

아이 2009.07.15 10:46 read.316

2009 07 14  멜랑콜리아 - 요시모토 바나나



1.
" 감독이나 스태프, 캐스트, 일정한 기간에, 어떤 일정한목적을 가지고 똑같은 얼굴들이 함께 일하잖아요? 밤낮의 구별도 없이, 나중에는 지쳐 꼬부라질 만큼 집중적으로. 가족보다도, 사랑하는 사람보다도 훨씬 깊게 밀착되어,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말이에요. 하지만 그것은 한 시나리오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고, 영화 제작이 끝나면 순식간에 해체되고 말죠. 그리고는 각자 서로의 일상으로 돌아가요. 뒤에 남는 것은 그 나날의 잔상인 영상뿐. 시사회 때면 틀림없이, 한 장면 한 장면이 지나갈 때마다 지난 나날들을 되새기겠죠. 하지만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바로 그게 인생 자체의 축소판일테지만, 평범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절실하게 느끼지 않아도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마유는 술이나 약에 중독 돼 있었던게 아니고, 어쩌면 그 만남과 헤어짐의 자극적인 사이클에 중독돼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2009 07 14 Amrita (암리타) - 요시모토 바나나


1.
혼자 있는 한밤의 부엌은 사고가 영원히 정체되는 지역이다. 거기에 오래 있으면 안 된다. 어머니를, 아내를, 딸을, 가둬두어서는 안 된다. 살의도, 맛있는 쇠고기 수프도, 알코올 중독에 걸린 주부도 거기에서 태어난다. 가정을 통괄하는 위대한 장소에서.


+ 요시모토 바나나의 '부엌'에 대한 특별한 의미부여/ 가정의 안정감을 도모하는 지역이지만 뒤틀린 불안정함을 갖고 있다는 시각/ 단편집 '키친' 참조


2.
죽은 자는, 산 자의 마음에 부드러운 그림자만 드리운다.
하지만 그 그림자는 본인이 아니니까, 옛날 일이라고는 하지만 훨씬 더 멀어진다. 이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고 멀다. 손을 흔들고 있다. 웃고 있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3.
셋이서 조잘조잘 수다를 떨었다. 내일의 일정, 남자친구, 그런 얘기들. 느닷없이 그녀가 나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 엄마! "

나는 가슴이 조여, 장난스럽게 그녀를 밀어 넘어뜨렸다. 웃음으로 그때의 감정 모두를 흘려보냈다. 흘려보내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순간적으로 한꺼번에 밀려온 것. 전부, 말로는 얘기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그녀의 모든것. 좋아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 지켜져야만 하는 것.

만약 내가 남자고 그런 기능이 있었다면, 안아주었을것이다. 만약 내가 임신부였다면 커다란 배에 살며시 두 손을 갖다 대었을 것이다. 그런 감정을 순간, 강하게 품었다.
또 다른 친구도 그랬으리라.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보니 너무도 생생하여 눈물이 찔끔 흐를것만 같았다.




4.
"나도 이런 얘기는 부끄러워서 하고 싶지 않지만, 가정을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단다. 사랑이란 말이지, 형태나 말이 아니고 어떤 하나의 상태야. 어떻게 힘을 발산하느냐지. 바라는 힘이 아니고, 온 가족이 서로에게 사랑을 주는 쪽으로 힘을 발산하지 않으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집안 분위기가 굶주린늑대 소굴처럼 되어버리지. 우리 집만 해도, 실제로는 내가 망가뜨린 것이나 다름없지만, 그건 계기에 불과하고, 또 내가 혼자서 일방적으로 그렇게 한 것도 아니고, 이전부터 시작되었던 일이야, 집안 사람들 모두가 서로에게 바라기만 했거든. 그런데도 계속 존속시켜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막바지에서 뭐가 필요하겠어. 그야 물론 타협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안 그랬어. 사랑..... 이랄까, 아름다운 힘을 발하는 추억이랄까, 그 사람들 과 함께였기에 좋았던 빈도라고 할까 ..... 그런 분위기게 대한 욕망이 남아있을때는 그나마 함께 있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단다."



5.
한밤중의 식욕은 악령이다. 개인의 인격과는 전혀 별개로 기능한다.
알코올도, 폭력도, 약도, 연애도. 그리고 아마 다이어트 마저도.
탐닉은 모두 마찬가지다.
선악이 아니고, 살아 있다. 그리고 마침내 싫증이 난다.
싫증이 나든지, 되돌이킬 수 없게 되든지. 그 둘 중 하나다.




6.
" 일단은, 역시 돌아가 볼 테야. 대신 부탁이 있는데"
" 뭔데? 말해 봐"
" 만약 내가 또 이상해지거든 지금처럼 어디로 데리고 가줄래? 그럴 수 있도록 엄마를 설득해 줄래, 이번 일까지?"
동생은 진지한 눈동자로 그렇게 말했다.


7.
그것은 아마도 <순조롭게 돌아가는 것>
설사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지 않더라도, 얼굴을 쳐들고 눈을 똑바로 뜨고, 잘 되어가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발산하면서 ,억지로 <순조로움> 을 자기에게로 끌어당긴다. 몇 번이나 보았다. 그 멋들어진 솜씨, 의지력.
흉내 낼 수 없다.





8.
"무슨 힘든 일 생겼을떄, 자문자답하면 되는 거에요?"
나는 물었다.
"그럼.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돼. 그럼 안 돼, 그건 달라, 귀찮군, 이라고 대답해도 상관없어. 매일 자기전에 눈을 감고 <진심으로> 묻는 거야. 생각대로 잘 안되는 날이 며칠이고 계속돼도, 그냥 계속하면 되는 거야. 그런 평범한 용기가 어떤 중심을 구성하기 시작하지. 종교 같아 보이겠지만, 살아가는 데 그런 거 하나쯤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9.
여름.
매미 울음소리. 나는 어린아이이고 집에 있다. 다다미에 엎드려 자고 있다. 아버지의 맨발이 눈앞을 가로지른다. 검은 발, 짧은 발톱. 저쪽에서는 여동생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발, 창밖은 녹음. 동생의 뒷모습. 두 갈래로 묶은 머리.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 사쿠미가 잠들었는데. 뭐 좀 덮어주지 그래. 어머니가 대답한다. 지금 튀김 만드느라 안 들려요! 부엌에선느 튀김을 튀기를 소리가 난다, 냄새도 난다. 긴 젓가락을 든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인다. 아버지는 할 수 업이 이불을 들고 와 덮어준다. 동생이 돌아보며, 언니 안 자요, 라고 말한다. 웃는다. 그리운 뻐드렁니.

Feed, 바로 이런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내 몸은 기억하고 있다. 모든 것이 상실되어도, 이렇게 변함없이 기억하고 있다. 모두들 그렇다.


10.
언젠가 나도 류이치로도 이 지상에서 없어진다.
뼈가 되고 흙이 되어,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
그 기체는 지구를 둥글게 덮고 있으며, 서로 이어져 있다. 일본도 중국도 이탈리아도 모두모두. 언젠가 바람을 타고 그곳을 순례하게 될 날이 온다. 지금은 이렇게 확고하게 여기에 있는 손과 발도 사라져 없어진다.
모두가 언젠가는 그렇게 된다.
마유처럼, 아버지처럼.
지금 살아 있는 모두가 언젠가는 그 뒤를 따른다.
아,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지금 여기에 있으며, 지금에만 존재하는 육체로 온 사방에 있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느낀다는 것이.
너무도 감동한 나머지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속도는 감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 절정에서 감상은 금방 메말라 눈 깜짝할 사이에 아득한 순간의 연속으로 흩어진다.
그리하여 이 눈물도, 금세 마치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리리라.




11.
마유는 자세히 보려고 하면 흐릿해지고, 무심결에 보면 눈부실 정도로 또렷하게 보였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둘 있어 "
마유가 말했다. 동생은 그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억울한 건 그뿐. 그뿐이라고 사쿠 언니한테 전해 줘. 사이판의 식물원에서, 둘이서 나를 생각해 줘서 고마웠다고. 그리고 사쿠미의 사쿠(朔)는 신월(新月)이란 의미가 아니라고, 엄마에게는 아버지가 자기를 잊었다고 분해하더라고, 그렇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고. 다 기억할 수 있겠니?"
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구나 ,많이 컸어"
마유는 미소 지었다.
"반드시 행복한 어른이 돼야 해"
동생은 울었다.





12.
"너, 대단원 이란말 아니?"

마유가 말했다.
동생은 고개를 저었다. 마유는 필사적으로 말을 찾아가며 계속 얘기했다.

"그런 게 보이면, 그러면 나는 만족이야, 정말. 내가 언젠가 또다시 인생을 거듭할 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서두르지 않겠어. 나는 줄곧 서둘렀지. 아무도 나쁜 사람은 없었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요시오, 너도 조숙하니까 조심해. 나처럼 서둘지 말고. 엄마가 만들어준 밥이며, 사준 스웨터며, 잘 봐. 반 친구들의 얼굴이며, 공사를 하느라 무너뜨린 이웃집이며, 잘 봐. 실제로 살면서는 잘 모르지만, 분장실에서 보면 아주 잘 보이거든. 하늘이 파란 것도, 손가락이 다섯개라는 것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그건 맛있는 물을 꿀꺽꿀꺽 마시는 것하고 똑같은 일이야. 매일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잖아. 모든게 그래. 마시지 않으면, 바로 거기에 있는데 마시지 않다니, 목이 말라서 끝내는 죽는 것과 마찬가지야. 난 어리석어서 얘기는 잘 못하겠지만, 그런거야.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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