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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2015.04.08 16:26 read.48

1.
걱정거리를 곳간에 마냥 쌓아둔다고 해서 해결되는건 아무것도 없으므로, 더이상 마당에 도토리를 줏어담는 다람쥐 처럼 종종 거리지 않기로 하였다. 내가 이 모든걸 해결할수 없다. 아무리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다. 그냥 귀를 닫고 눈을 닫아버리는게 쉬운 방법이 되리라. 배가 고프면 먹고 입맛이 없으면 먹지 말자 굳이 매 끼니를 줏어삼키는것도 일종의 강박관념일 수 있다. 졸리면 자고, 보고 싶으면 보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말자. 이제 까지 나 스스로에게 열심히 꾸며대던 노력의 아웃풋들에 더이상 집착하지 말자.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다. 이젠 내 속에서 흘러나오는 '속삭임'들에게 좀 더 자리를 내어 주자. 불긋한 채찍으로 열심히 등을, 마음을, 머리를 때려대고 채근했지만 그 시간의 고통 외에는 남아있는게 없지 않은가? 그런것들을 바로 마주하려 하지 않고 달려나가려고 했던 과거의 나는 참으로 불쌍했구나.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단어들을 햇볕에 이불 말리듯이 털털 털어내어 앞에 걸어두며 나를 끊임없이 비난하고, 조롱하고, 증오하였는데.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도대체 무얼 위해? 내가 좋다고 했던것들이 고스란히 내게 부메랑이 되어 목울대를 두들기고 있음에, 이젠 다리를 뻗기 보다는 주저앉는 쪽을 택하는게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실패했다고 자평하기 보단 이 모든것들을 단념하고 편해지는걸 '선택'했다고 하는 것이 옳으리라.


2.
근 5년의 기록물들을 쭉 리뷰 하며 든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물에 대한 반응이 밍숭하게 변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좋아하는것 또는 싫어하는것에 대한 취향이 극명한 차이를 보이며 양 극단을 꿈틀거렸다면, 지금은 제 3의 것에 대한 관심이 들풀처럼 일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물론 취미 활동 (드덕질 또는 찍사질)을 내려놓지 않았지만. 집착의 바운더리를 우주밖에서 구경하고 있는 구경군처럼 화자가 아닌 타자로 변모하는것 같다는 애매함이 있다. 뭐랄까, '좋아해!'라고 소리치는것이 내 내면이 아닌 타인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소리를 바라보는것 같은 이질적인 행위 같다고나 할까. 본디 쉬이 싫증을 잘 내는 타입이였지만, 지금은 '기력이 부족해!'라는 변명으로 때려치는것들이 비일비재하니 (...) 이러한 현상을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기력도 '부족해' 져 버렸음에 뒷방 늙은이처럼 정신을 널부러 뜨려놓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처음 드는 생각은 '또 시작되었군' 이고, 하루가 지나가는 말미에 회고하길 '내일도 또 그렇겠군'이란 헛헛한 자조라는. 지치고, 피곤하고, 졸립고, 늘어지고, 재미가 없는 삶이 지나고 또 지나고 또 지나다 보면 어느새 머리가 하얘지고 허리는 구부러 지겠지 라는 별 볼일 없는 예상이 든다. 그런 감상이 또 나를 지치게 하느냐. 것도 아니라는거지. 이제는 그냥 그런건가 보다 싶다. 인간들이 들들 볶아대는게 끔찍해서 정말 이 밥벌이를 때려쳐야지. 라고 웅얼웅얼 거려도 그때뿐이다. 또 그럭저럭 버티다 보면 시간은 지나고 돈은 나오니 아 그래 뭐 참으면 다 괜찮아지는거구나 라고 수긍하게 된다. 들 짐승은 이렇게 집 똥개가 되는가 싶고 ㅎㅎ

3.
표면화 테스트를 했는데, 점수가 생각보다 너무 높게 나와서. 당황(?) 했다. 이 시점에서 이것이 노화에 의한 피로도의 증가인지 세로토닌 부족으로 인한 질병의 발현인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후자인건 예전부터 알았는데, 병원가는 돈이 너무 아까워서 버티는중..) 퇴근 후에 집에 들어가려고 문 앞에 섰는데, 갑자기 비밀번호가 떠오르지 않아서 세번이나 틀리고 겨우 문을 열었으니. 뭔가 좀 이상해지긴 이상해 진거같음.


4.
여수 사진을 보니까 향일암이 가고 싶어져서 (지금쯤이면 오동도의 빨간 동백꽃이 마감을 피울 시즌이라는) 뛰쳐나갈 궁리로 몇가지 루트를 찾아보았으나, 이리 구르고 저리굴러도 인간이 넘실거리는 주말을 피할수가 없(는데다가 그 오랜 시간을 차 속에서 꿈쩍없고 버티는 기력이 소진하여) 다는 생각에 도달한 바, 또 반나절 만에 단념하고 말았다. 바람 쐬고 싶다. 답답함이 석회질이 드글거리는 지층마냥 꾸욱꾸욱 명치를 누르고 있는걸 허공에 대고 푹푹 터트려야 좀 시원해 질까 싶은데. 예전에 다녔던 여행지들 사진을 보며 달래는 중(이긴 개뿔 하나도 안달래짐 ㅠㅠ 시벌)에 스페인 사진을 아직도 정리 못해서 하드에 방치해놓은게 900장이 넘는걸 보고 또 기겁하고야 마는 ㅋ 하긴 해야지.. 하긴 해야하는데 아아 귀찮아. 창을 닫아놓고 또 멀리 던져놓아 버린다. 또 이렇게 상황을 회피하며 잊어버리게 되는 방식을 택하는 ㅎㅎ

5.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은데 엄마의 앞에서 '즐겁고 행복한것들'을 연기 해야하는게 너무 피곤한 느낌이라 단념하였다. 누군가들에게 걱정을 안겨주는것이 너무나 부담스럽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내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이래이래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말을 할때 100% 완벽하게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군다나 부모는 나의 상태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부각하여 더욱더 걱정을 쌓아두게 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더 아득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니 더욱 더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의 강박관념 따위들은 타인이 행하는 반사행위 들에 파르르 떨리는 풀때기 마냥 휘둘리게 된다. 나는 그들의 내뱉는 사소한 단어들, 표정에 쉽게 상처 받는다 (물론 그들은 그런 의도로 한게 아니겠지만) 타격을 받을수록 나는 더 깊은곳으로 꾹꾹 숨어들어가 그들이 나를 찾아내지 못하게 만든다. 다음에 그것들을 마주하게 되면 좀 더 어른스럽게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은 생경자 처럼) 행동하기 위함이다. 부모가 나의 상태를 돌아보며 안타까워 하는 반사행위들이 내게 또 한번 생채기를 주게 될것이다. 그러니 찰나의 위로를 받기 위해 그들에게 가는 발걸음을 거두는것이 옳다. 이것이 바로 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 될 터이니 (몹시 아이러니 하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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