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어가 드글드글 끓어오르는 계절이다. 스트레스가 극도로 치밀고 나는 다시 악몽을 꾸기 시작한다. 해결할수 없는것들은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천천히 같이 고민해 보자고 동생을 다독였지만 사실은 그게 가장 큰 스트레스의 버튼을 눌러버린것이라고. 내가 할수 없는 일. 해결 할수 없을만큼 커다란 벽과 같은 불안의 무게는 잊어버린 틈의 사이로 시시각각 해일처럼 밀려온다. 무시했지만 무의식속에서는 너무 크게 자라버린 터라 어찌할바를 모르고 허덕이고 있다. 지난밤 꿈에는 아버지가 미숙한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로 젊은 상대방에게 실례를 저질렀고 그분은 그것을 인지했으나 여전히 미숙한 커뮤니케이션 때문에 어쩔줄 몰라하시는것을 애달프게 바라보며 맘을 졸였다. 그분들이 모두 힘들지 않으면 좋겠다. 시시각각 매일을 생각한다.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분들을 행복하게 하려 애썼다. 비겁한 얘기지만 나는 목숨을 버리고 싶은 순간이 부지기수였지만 그들이 불행해질테니까 라는 이유를 들어서 지지부진 연명하며 살았었다. 그렇게 열심히 했지만 커다란 금전의 영역은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분들의 몫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쉽지 않다. 내가 돈이 많으면 모든걸 다 털어서라도 그것들을 해결해주고싶다 하지만 할수없다. 나는 돈이 없으니까 그게 현실이다.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인건가 그게 모든걸 해결할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함에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내 자신이 버겁다. 이건 돈이 문제가 아니라 정신과 사고방식의 문제라는것을 인지해야한다. 나는 그 모든 인간들의 불행과 고통을 구제할수가 없는것을 알고있는데. 몰아치는 폭풍을 감내하다보면 짜증이 치민다 왜 다들 각자 알아서 잘 못살아서 나를 이렇게 부담스럽고 버겁게 하는가? 좀 알아서 잘들 살아줄수 없나? 나는 그들에게 그런 부담따위 주지 않는 존재인데. 그런 생각을 느끼며 더 죄책감에 휩싸인다. 불안한 미래를 계속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아지는건 없으니까. 그건 누굴 위한 것일까? 아무리 내가 애를 써도 아버지의 함몰적인 사고방식이나 화법을 개선할수도 없다. 친절하고 상냥한 나의 동생이 옆에 있을때엔 많은 대화와 대화로 증상을 좀 더 개선했었다. 그때는 좀 더 나았지만 지금은 할수없는 일들. 나는 아버지가 안타깝고 그 비슷한 고통을 같이 감내할때는 나와 다르지 않은 비상식의 결을 느끼며 슬퍼했다. 나는 현실의 고통을 아버지가 느꼈던 그 자죽의 비슷한 언저리에서 동일하게 감내하고 있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아버지는 일주일을 야간 근무에 시달리고 아침에 돌아오는 집에서 잠을 청하면서 어떻게 고통을 사그라 트렸을까. 자녀에겐 내색할수 없는 그 모든 외부의 풍량과 내면의 좌절을 어떻게 다독였을까. 그때에 심심찮게 마주하였던 시리고 피로에 가득하였던 그 담담함 얼굴을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그들의 일상을 나는 똑같이 걸어가고 있음에 그때의 어리고 젊었던 그분들의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던 미성숙한 내가 안타까워. 아마도 나는 그때의 죄업을 씻기 위해 지금의 시점에서 부던히 노력하려고 애쓰는거 같아. 끝이 없는 죄책감. 부채감.
나는 아이를 갖고 싶지만 내 아이가 이렇게 같은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세상을구제할수가 없을거같아서 고통스럽다. 그래서 더 주저하는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지만 (나의 부모처럼) 그것이 그 아이에게 숨막히는 부담을 안겨주게 된다면 난 어떻게 해야할것인가? 이 문제는 너무나 큰 숙제야 서른의 후반을 달려가는 이 상황에 아직도 답을 내릴수가 없다. 이건 타인이 아닌 내가 결론해야 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2.
운동을 놓으면 안되는데 요새는 또 계속 처지는 상태라 걱정이다. 역시 나는 지구력이 떨어지는 타입인가 끈기라는걸 갖고 싶다. 타인은 나에게 무던한 성실함이나 어떤것들을 논하는 평가를 안겨주지만 내 스스로 자각하기에 나는 그런것과는 거리가 먼 타입이라고 결론한다. 물론 일터에서 그러는건 돈이 있으니까. 돈이 걸린 문제에서는 정신병을 유발할만큼의 예민함과 상세함을 유지해야한다. 돈은 그냥 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난 아득부득 열심히 성실의 모드를 꾸며대는 중 (....) 십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는 그럭저럭이다.
내가 끈기가 없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한사람이랑 십년을 연애하고 결혼을 했을까. 남편은 내게 가끔 내가 아니였으면 본인은 혼인하지 않았을 거라고 하는데. 나도 그런 생각을 한다. 남편이 아니였다면 나는 결혼같은건 애초에 포기했을것이다. (물론 아버지 어머니의 엄청난 비난과 독촉에 시달리다가 외국으로 도피했을수도.. 또는 급박하게 떠밀려서 했다가 이혼이나 또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을수도 있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 연애를 한번 했는데 그 기억은 그렇게 좋지않다 (그 과정을 알고있는 남편은 또 심심 찮게 전 애인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놀리기엔 주저않으시지만..) 그분은 물론 다른 여자분과 혼인하였고 잘 사실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분과 오래 만나지 않은건 서로의 인생에 좋은 선택이였다고 생각한다. 처음 만났을땐 좋아했다기 보단 내가 너무 외로워서 (대학교 1학년때 너무 좋아했던 사람과 현실화 되지 못하여 상당히 피페해져있던 상태였음. 그분은 내가 연애를 실패하고도 곧잘 본인의 어장에 나를 계속 꼬득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ㅈ 같은 새끼였네 ㅋㅋ)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그냥 만났다. 생각해보면 정말 미성숙한 태도였다. 그 몇달은 잘해주는 패턴에 충족하다가 그 이후엔 시들해져서 사소한것에 갑질을 했던 뭐 어린아이의 그러저러한 과오. 그래서 그분이 종결을 선언했고 나는 악인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리고 나서는 계속 다시 만나자는 연락이나 내 주변인들한테 치덕거리시는 그 패턴에 점점 질리고.. 역시나 이런 연애아닌 연애의 마무리는 좋지 않았다는.
다시는 학교에서는 연애하지 않을거야!로 지인들에게 선언하고 또 학교에서 연애했다. 금사빠인 나는 남편을 꽤 좋아했던거같은데. 뭔가 컨텍이 오기 전에도 막 이것저것 돌이켜 보며 좋았어 라고 하는 포인트가 되게 많았다. 재밌던 기억 그리고 뭐 언제나 그렇듯이 항상 평탄하지 않았던 굴곡. 어느 지점에는 지겨워졌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증오에 휩싸이다가. 온천의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같은 흐름이였다. 인간관계나 호불호에 쉽게 질리던 나같은 인간이 어떻게 한 사람을 이렇게 오래 좋아할수 있을까. 또 새삼스럽게 너무 신기해서 고르곤졸라 피자와 버드와이저를 곁들어 먹었던 카페아닌 맥주집 테이블 너머에 있던 뽀얀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어여쁜 시간도 다 지나고 현실의 피로에 휩싸인 아버지같은 얼굴의 그 사람을 바라보면서. 손가락을 만져봤는데 여전히 따뜻해서 마음이 또 꿈쩍거린다. 이런것이 사랑인 거라면 나는 그 구절에 노오란 포스트잇을 세개정도는 붙일수 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고통과 시간을 감내하는 동지를 갖고있는 이 기분은 어느 부자가 느낄수 없을만한 충만함 이겠지. 이런 삶에 한번 더 감사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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