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괜찮아

아이 2012.04.29 22:54 read.153


그럴땐 정말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떡하면 좋지, 라는 난감함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아래의 나는 아끼는 풍선을 손에서 놓친 어린아이처럼 안타까워지고야 마는것이다. 나이가 찼으니 이젠 결혼도 했겠네, 지금은 뭐 하고 지내? 갑자기 생각났는데 그 친구 말이야.  익숙하고 별것없는 안부지만, 이럴때 나는 누구보다 먼저 몸을 웅크린다. 웃는 얼굴을 풀어버릴수 없는건 술기운이 눈썹까지 차올라있었기에 말초신경의 반사가 느려서 그런것일꺼라고 대충 둘러대보지만, 사실은 그럴땐 정말 어떤 리액션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런거다. 웃는얼굴이 제일 편리한거 같다. 어색하게 볼따구가 움찔거려도 보는 사람은 그보단 마음을 덜 무겁게 지나갈수 있게 되니까.  바스락거리는 포장지로 돌돌 쌓아버린 꾸러미를 내민다. 하늘의 별이 되었어. 저기 먼 하늘의 별. 그러면 그들은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단어사이를 파고든다. 그러면 나는 정말 길을 잃어버린 아이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들은 그런 이야기따위는 하나도 궁금해하지 않아. 단지 A와B를 나누고 있는 경계만을 알고 싶을 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미리부터 겁이 나서 더더욱 당황하고 만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꺼낸다. 그 아이는 죽었어.  물어본 상대방에게 더 곤란한 무거움을 던져주는 몹쓸 불친절함으로.


두 팔을 커다랗게 벌리며 과장스러운 몸짓으로 손사례를 친다. 나는 정말 괜찮아. 울고있던 나의 어깨를 투닥여주던 그 사람의 위로에게도 나는 정말 괜찮아. 등촌동 공개홀 앞 유리창에 비추던 검은 원피스의 나에게도 괜찮아. 이마를 찌푸리며 손바닥을 당황함으로 부비며 시선을 돌리던 그들에게도 나는 정말 괜찮아. 괜찮다는 말을 거푸 건네도 그들은 믿지 않겠지. 하지만 정말 괜찮은걸. 밥도 잘 먹고, 술도 잘 마시고, 봄내음으로 가득 부풀어있는 공기를 깊게 집어넣을수 있는 육체도 가지고 있는걸. 나는 정말 괜찮아. 괜찮아.


사람이 참으로 모질지. 손바닥으로 젖은 흙바닥을 쓸어내리던 나의 뒤에서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울음섞인 한탄.우리는 오래전부터 만났던 사람들처럼 강화터미널의 백반집에 앉아 밥을 먹었다. 세사람은 동시에 즐거운 웃음을 터트리며 종알거렸다.  기지배가 승질이 얼마나 센지 몰라.  생선도 맛있고 밥도 맛있고. 다 먹고 택시를 타는데 창밖에 지나가는 꽃나무엔 분홍빛 진달래 새순이 툭툭 불거져 나와있었다. 강화도엔 볼거리가 참 많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기사아저씨의 말에 맞장구쳐주는 언니의 이야기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잠이 올거같은 두눈을 부볐다. 가슴에 끌어안은 꽃만이 어색할 뿐.  팔랑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 가지와 그 아래 가지런히 모여있는 하얀 돌맹이들.  뼈마디가 지릿지릿할 정도로. 꿇어앉은 발등이 시큰거림을 느끼는것은 현실이지만,  누군가 쉴세없이 나의 귀에, 머리에 속삭여주는 부재를 마주하는건 비현실이다. 책상구석에서 발견한 꾸깆꾸깆한 낙서의 자그마한 글씨들도 그대로이고, 너 이새끼 재수없다. 라고 써붙였던 편지들도 그대로이고. 팔랑거리는 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누비던 사진속의 얼굴도 그대로인데. 말도 안되는 일이다. 엉킨것들이 공처럼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도망갈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린다. 그래 이건 참 말도 안되는 일이다.



-
잘 베어놓은 결론은 없다. 그저 나는 괜찮다는것을 이야기 해주고 싶을뿐이다. 어색하게 나의 얼굴을 바라보는 상대방의 이마살 주름을 펴주기 위한 산뜻한 장치의 일부이다.  아무것도 닿아지지 않는 현실 아닌 현실을 마주하기 위한 뻣벗한 노력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런건 타인을 위한다는 이유로 행해지고 마는 지극한 이기의 행동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그런 인간이니까.



-
나는 참으로 못난 사람이였지. 나를 잘 참아주어서 고맙다. 파르르 날이 선채 휘두르던 칼짓을 다 견뎌내주어서 고마워. 너는 참으로 좋은 사람이야. 너는 참으로 괜찮은 사람이야. 어색하다는 이유로 하지 못했던 칭찬들이 바스락거리는 종이 안에 아깝게 남아있네. 아둔한 내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런걸 다 알아차려주었기를. 너는 현명한 사람이니까.

다음에 정말, 우리가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부디 나의 딸로 태어나줘. 사랑한다는 말을 수만번 건네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더 오랫동안 나와 함께 있어줘. 네가 보고 싶을때마다 너의 얼굴을  수백번도 더 넘게 쓰다듬을수 있게.  너를 사랑했고, 사랑한 시간을을 수백개의 실타래에 감아놓은채 차곡차곡 나의 한켠에 담아둘게.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64 12072730 2012.08.04
63 . 2012.06.28
> 괜찮아 2012.04.29
61 - secret 2012.04.16
60 신화 2012.03.21
59 . 2012.02.13
58 - 2012.01.26
57 무의미 2012.01.23
56 끝과 시작 2011.12.31
55 ㅈㅈ 2011.12.26
54 - 2011.11.10
53 - 2011.10.09
52 110929 2011.09.29
51 R 2011.09.23
50 36차 고백 2011.08.07
49 목포 2011.08.03
48 110519 2011.05.19
47 불안 2011.04.11
46 아이고 2011.03.21
45 20110318 2011.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