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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2011.12.20 01:23 read.183







고통에 휩싸이는 인간은 허투로 벗어나지 못한다. 거죽같은 굴레도, 압정마냥 빼쭉하게 솟아있는 감정의 조각들 에게도, 어릴적 만난 친구의 어머니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둡고 굶주린 아이와는 마주해서는 안된다고. 그 굶주림은 육신의 고단함을 가리키는것이 아닌, 감정의 깊이를 의미한다는것을 비로소 성장한 이후에야 어스름하게 깨닫는다. 나는 몹시도 굶주린 삶을 살았었다. 결여된 부모와의 관계에서도, 짤막한 사람들과의 교류에서도, 단절되어있는 나 자신과의 이해에서도.


그녀가 나의 손을 잡았을때, 너무나 찰나의 순간이였으며 하찮기만한 스침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혈관을 서투르게 마모시키는 괴이한 느낌을 받았다. 물렁하고 차가운 손바닥,  차가운 길바닥에서 엄마를 기다리느라 기운을 모두 써버리고 만, 어린아이의 노곤함으로 꽁꽁 얼어버린 손바닥을 어루만지는 온전한 공기의 그것.

시큼한 알코올이 퀘퀘한 반지하의 공기에 뒤섞이며 폐부를 말리는 동안. 나는 다시 그녀의 옆 얼굴을 바라본다. 얼핏 바라본 시계는 10시의 반을 넘어가고 있다. 이 쯤에서 누군가 사라져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눅눅한 취기가 가득한 테이블 사이로 푸른 빈병이 나뒹굴고 있고, 그 앞에는 누군가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  나갈래요? "


어디서 부터 튀어나왔을 용기일까, 생전 대면도 한번 하지 못한 말이 어떤 의도로 튀어나왔는지 화자인 나조차도 알수가 없었다. 고작 손을 잡았다고 하여 그녀가 내쪽으로 온전한 신경을 미끌어뜨렸을까? 그것은 아니리라. 내가 보고 있는 그녀의 옆 모습, 그 속의 시선은 어느 누군가를 집요하게 쫓아가고 있다는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가능하다면 나의 손으로 그녀의 불안을 거두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 저 새끼가 아니라면 괜찮겠다는 생각은 해본적 있어. "


한참을 말이 없던 그녀가,  반쯤 채워있던 소주잔을 한모금 털어놓고는 다른 모호함을 털어놓는다. 나는 회색의, 잘 시멘된 빈 공터처럼 앉아서 그녀를 바라본다. 노오란 불빛에 바스라히 흔들거리는 몇가닥의 머리카락이 이마에 어지러이 놓여있고, 손버릇처럼 검지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빈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생각에 잠겨 있는 그 모습을.



"그런데 왜 안될까. "


쪼로록 소리를 내며 유리잔속으로 미끌어지는 액체를 응시한채 중얼거린다. 시선은 더이상 흐르지 않고, 외부의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곳에 나와 그녀가 유리섬처럼 부유하고 있다. 놓치고 싶지 않은 기분에 마음 한켠이 다급하다. 불안한 모습으로 난간에 서 있는 그녀를 내 손으로 내려주고 싶다는 욕심때문에.


" 안되는게 아니라 안된다고 착각하는거겠죠. "


그녀의 잘게 잘린 생채기를 아무 내색없이 푸욱 질러내고 만다.  불쾌한 내색을 보일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한켠이 더 시려온다. 나는 어떠한것도 바꿀수 없는 존재였다. 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거 같아서. 잔을 멈추고, 허리를 곧게 세운채.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이마에는 노오란 백열등으로 창백한 빛이 스며들어있다. 그 빛은 그녀의 눈썹에 차곡 쌓여, 점차적으로 시선과 시선 사이에 가늠하지 못할 깊이로 자리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나의 어느 부분을 강하게 움켜쥐고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어 버리고 만다.


" 위로 치고는, 기분이 더럽네. "
" …… "
" 원래 쓴 약이 몸에 좋은거긴 하지만. "
" 그런 여유 부리는거 보면, 이젠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


눈가가 느릿하게 휘어진다. 가볍게 터지는 웃음, 파스락 거리며 번져가는 새푸른 공기, 매퀘한 공기, 낮은 공간감. 그 속에 밀집한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


" 난 네가 좋아. "


어떠한 망설임과 고민 없이 던져지는 그 말에, 새벽 강둑에 서서 아이를 두고 목놓아 우는 촌부처럼 까마득한 피로에 휩싸인다. 현기증으로 휘청거리는 다리를 애써 곧추세우고, 아무렇지 않은척 걸음을 옮기는 몸뚱이 속에는 노쇠한 자존심이 가득하다.


" 그 싸가지 없는 방식이.  "
" 칭찬치고는 고맙지가 않네요. "
" 고마운건 내쪽이고. "
" ……..  "
" 고맙다고.  했어야 했는데, 한번도 못했다. "


그녀가 다시 한번 더, 나의 손등을 움켜쥐었을때 그 자리를 박차고 싶을만큼 가슴이 아팠다. 고집스러운 아이처럼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버티기 시작한다. 나는 정말 괜찮지가 않은데, 괜찮음을 갈구하는 이 앞에서 괜찮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데, 왜 하필이면 그녀는 나에게서 안정적인 괜찮음을 확인하고 싶어하는것일까. 이런 담백한 감사 인사를 망설임 없이 건내줄 만큼, 나는 그녀의 장막 어느 한곁에도 달라붙을수 없는 타자인것일까. 몰아치는 자괴감에 숨을 쉴수가 없었다. 그녀의 살풋한 친절, 과한것에 대한 거부반응. 그러나 나는 단순한것들을 단순하지 않은 나의 체계로 포섭하며 환상을 쌓아가려 한다.


" 취했어요?  아니면 죽을 날이 얼마 안된거야."
" 살기 싫은데, 살아지는 아이러니의 극대화라고나 할까. "
" 난 그래서 선배가 싫다구요.  "
"  크큭  "


잔을 내려 놓고, 옷을 움켜쥔다. 카랑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그녀가 나를 붙잡는다. 뿌리치고 싶다. 커다란 움직임으로 떨궈내고 싶다. 뒤도 안돌아보고, 단호하게.  하지만 그녀는 미세한 완력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달큼한 내음이 후각에 스며들어온다. 다가온 그녀가 나의 얼굴을 말없이, 찬찬히 바라본다.


" 나, 다 알아. "


억울함이 쌓여있는 그곳을 더 강하고, 커다랗게 질러가는 속삭임.


" 우리 잘래? "


표현할수 없으리만큼 거대한 슬픔이 나의 온 마음, 몸뚱이위로 부시게 쏟아진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움켜쥐고, 그녀를 더이상 바라볼수 없으리만큼 먼 곳으로 보내는 배에 태우듯 밀었다. 한숨이 터져나왔다. 이것은 울음을 대신한것으로서, 더이상 대체될수 없는 슬픔이였음에


" 그러고 싶어요? "
" 응 "
" 왜요.  왜냐구요. "
" 네가 좋으니까. "


보낼수 없는 이야기들이 형체를 알수 없이 바스러져 간다.


" 다 아는데도, 그러고 싶어요? "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손끝이 옷깃을 스쳤으나 잡아채지는 못한다. 그러면 그렇지, 그러면 그렇지.  처음부터 다른것은 기대해서도, 생각해서도 안되는것을 생각해서도 안된다는것을 왜 알지 못했을까. 아니 알았음에도 받아들이지 아니했던것일까.


십일월의 겨울 바람이, 술집 쪽문 앞에 서있는 나에게 밀어닥친다. 심지를 잃었던 정신이 점차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파카에 손을 집어넣고 반대편 큰 도로로 향했다. 그 순간 뒤에서 나를 기어이 붙잡는 손.


" 같이 가. "


가볍기도 쉬운게 이만한 것이 없다. 소매를 파고드는 가느다란 손가락에서 나긋한 찬기가 느껴진다. 외부의 차가움이 아닌 내면의 냉기, 춥다. 가슴을 파고드는 추위가 몸뚱이를 얼어붙게 하는 추위보다 더 잔혹하게 느껴졌다.

반걸음 앞서 걸어가는 뒤통수를 보며 옅은 한숨이 터진다. 작은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본다. 발갛게 얼어붙은 볼에 나도 모르게 손이 뻗어진다. 내밀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재빠르게 손을 감추
려 했다. 그러나 그녀가 나의 손을 잡고 자신의 오른뺨으로 가져간다.

" 따뜻 하다. "

나의 한숨만큼이나 더 희미하게 번지는 그녀의 미소에 또 멈춰버린 어딘가가 욱신욱신 쑤시기 시작했다.


" 나한테 뭘 바래요? "
" 그러는 넌 나한테 무얼 바라는데? "
" 난 그런거 없어요. "
" 거짓말. "
" 억지 쓰지 말아요. 자꾸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에요? "
" 해주고 싶어서. "
" ……… "
" 네가 먼저 오지 못할걸 아니까. "


나의 앞에 다가온 그녀는 자신의 두 손바닥으로 나의 얼굴을 감싼채 나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멀어졌으나, 나의 손은 여전히 그녀의 바른편 빰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부분이라도 벗어날수 없다는것을 알고 있다. 누락된 지점을 들춰내며 읊조리는 그 담담한 냉정함이야 말로, 나를 죽이면서 살릴수 밖에 없는 그녀에게서 흘러나온 유수와 같은것이므로.


" 나한테 왜 이래요.  "
"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
" 이런게 날 더 고통스럽게 한다는 거, 알아요? "
" 알아, 미안해.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것도 이런거 밖에 없는거 잘 알잖아. "
" 아니, 모른다구요. "


짖이긴 감정에서 튀어나온것들이 눈가에 희끄무레한 자욱을 남기며 흘러나온다. 나한테 제발 함부로 굴지 않았으면 좋겠어. 거칠게 튀어나오는 욕설과 함께, 꽃밭을 밟는 무지한 아이의 발길질마냥 그녀의 육신 한 부분을 취한다. 닿아있는 까슬한 입술 사이의 매끄덩한 호흡. 나는 울고 싶었으나, 눈물이 나오지 않을만큼 담담해졌다. 감정이 폭풍처럼 휘말려 들어갔으나, 그것은 나의 외부가 아닌 나의 내부를 맴돌 뿐이였다.


" 내가 밉지. "


빠져나올수 없을만큼, 단단하게 옭아멘 팔로 그녀의 등을 끌어안았다. 더 가까이, 더 많이 가까이. 피부와
피부가 아닌 감정과 감정을 묶어놓기 위해서. 그 부질없는 것들을 위해서.  나의 귓바퀴에 서리게 지나치는 그 속삭임에 모든것을 놓아버리는것을 아쉬워 하지 않기 위해서.  


" 죽이고 싶을 만큼 "


세상에는 단 두가지만이 존재한다. 절박한것과 절박하지 못한것, 후자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어떤것을 더 내어주어야 하고, 어느것을 단념해야 하는것인가. 내 품안에 가득 차 있는 메마른 육신을 갖는것만으로도 단념을 멈출수가 있다면, 나는 이렇게도 아릿하게 저물어가는 해무리처럼 사라지지 않을것이다.  희끄무레하게 나의 발등을 뒤덮은 거품에서 바삭바삭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내가 그녀에게로 향하기 이전, 나의 근원이자 시발점에서 부터 비롯된 것이다.  점점 잊혀지고 있던 것들을 향한 향수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내가 아닌 그녀에게로 점점 스며들어 간다. 진홍빛 뺨에 스치는 말간 액체와 함께.

지금 그녀의 혈관 속에는 적어도 나의 체온이 30%는 스며있음에, 섣부르게 기뻐하는 어리석음을 보아라. 이다지도, 이다지도 절박하지 못한 존재를 어느 곳에서 찾을수가 있단 말인가?








18 K secret 2019.05.08
17 D 2012.05.03
> 30% 2011.12.20
15 세개 2011.07.11
14 굿, 201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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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Fr 유아기 secret 201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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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011.05.04
9 무채색 인간 (D/I) 1 secret 2011.05.04
8 17 201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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