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쟁이, 외

아이 2009.08.13 10:29 read.409


2009 0812 난쟁이   Herman Hesse

그는 바로 물에 빠져 죽은 강아지 피노와 목이 비틀려 죽은 앵무새를 생각하면서 동물이든 인간이든 모든 존재에게 파멸은 항상 가까이 있으며, 이 세상에서 우리가 미리 보거나 알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라는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네. 그는 또 아버지와 고향과 자신의 한평생을 생각해 보았지. 거의 어디서나 현자가 바보들의 시중이나 들고 있으니 인생이란 한 편의 엉터리 코미디 같다는 생각에 이르자, 그의 얼굴엔 냉소가 피어올랐네. 그리고 자신이 입고 있는 값비싼 비단옷을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어.


2009 0812 피리의 꿈

그 남자는 일어서서 어둠 속을 가리켰다. 등불이 수척하면서도 단호한 그의 얼굴을 밝게 비쳤다.
'돌아가는 길은 없다네' 그는 엄숙하면서도 친절하게 말했다.
'세상의 근본을 탐구하려면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거야. 그 갈색 눈동자의 소녀에게서 자네는 이미 가장 좋은 것, 가장 아름다운 것을 가져버렸어. 멀리 떨어질수록, 그 소녀는 더욱 귀하고 아름다워질 걸세. 어디로든 자네가 가고 싶은대로 배를 몰고 가보게. 내 조정석을 자네에게 양보하겠네.


2009 0812 아우구스투스

'빈스방거 대부님' 그는 말했다. '제가 또 나쁜 짓을 했어요. 엄마가 집에서 울고 계세요. 다시 착해지겠다고 하더라고 엄마에게 전해주세요. 그래주실래요?'
'그러마' 대부는 말했다. '안심해라, 엄마는 널 사랑하신단다.'

(덧1/ 헤세의 글중 공통적인 특징중에 하나. 이야기의 끄트머리에서 인간성의 회복을 이야기하는 수단으로서 '유년시절로의 회귀'를 사용한다.
(덧2/상술한 구절이 그 구절자체가 갖고 있는 특별한 빛깔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나  전반적인 문맥으로 보았을때 클라이막스로 보기 때문에 추록에 덧붙여 놓는다.)


2009 0812 다른 별에서 온 놀라운 소식

1.
'하지만 제발 말해 주세요. 이 별에서는 왜 이런 전쟁이 일어난 거지요? 누구의 책임인가요? 폐하도 거기에 대해서 책임이 있나요?
왕은 오랫동안 젊은 사절을 응시했다. 주제넘은 그의 질문에 언짢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왕은 자신의 어두운 눈빛을 이 이방인의 밝고 악의 없는 시선 속에 오랫동안 머물게 할 수가 없었다.
'넌 어린애다' 왕은 말했다. '그리고 이것은 네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야. 전쟁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야. 그건 폭풍이나 번개처럼 스스로 오는 것이고, 그것에 대항해 싸워야 하는 우리 모두는 전쟁의 선동자가 아니라 그 희생자일 뿐이다'


2.
'우리별에서는 살해당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가장 심각한 범죄로 여기지. 전쟁에서만 사람을 죽이는 것이 허락되고 있지. 전쟁에서는 미움이나 질투, 또는 자신의 이익 때문에 남을 죽이는 게 아니다. 사회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모두들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쉽게 죽는다고 생각한다면 오해야. 죽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을 게다. 그들은 힘들게 죽는다. 힘들게, 마지못해서.'



2009 0812 팔둠

1.
'내가 원하는 건' 그는 말을 더듬거렸다. '내가 원하는 건 한 이백......'
이방인은 그를 찬찬히 뜯어보고는 주머니에서 가죽지갑을 꺼내어 흥분해있는 남자의 눈앞에 내밀었다.
'잠깐만! 혹시 이 지갑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반 탈러가 들어있던데요.'
'예, 제가 그걸' 하고 남자가 외쳤다.'그건 제 것입니다'
'다시 갖고 싶으십니까?'
'예, 예, 이리 줘요!'
이렇게 해서 그는 지갑을 찾게 되었지만, 그것으로 소원을 말 할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를 써버린 셈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지팡이로 이방인을 내리쳤으나 빗나가는 바람에 거울만 한 개 깨뜨리고 말았다.


2.
어떤 진실하고 늙은 여자 요리사는 화덕 앞에 서서 주인을 위해 막 거위를 굽다가 창문을 통해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일평생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 것을 소원하기 위해 거기서 뛰쳐나가 시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군중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녀의 양심은 더욱더 분명하게 그녀의 마음을 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차례가 되었을 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자기가 돌아갈 때까지 거위가 늘어붙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3.
세월은 흘러갔다. 허물어져 내리고 울퉁불퉁한 돌무더기로 둘러싸여서 죽어가는 산은 자기의 꿈에만 몰두했다. 예전에는 어떠했던가? 지나간 세계와 그를 이어주던 울림, 정교한 은실 같은 물줄기는 이제 없는가? 그는 곰팡이가 슬어버린 기억의 밤을 힘들게 파헤쳤다. 끊어진 실을 찾아 쉬지 않고 더듬어 갔으며, 계속 되풀이해서 과거의 심연 위에 몸을 깊숙이 구부렸다. 그에게도 아득한 옛날에는 유대감이나 사랑이 타오르지 않았을까? 고독하고 위대한 존재인 그도 한때는 동료들 사이에서 비슷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에게도 언젠가 태초에는 어머니가 노래를 불러주지 않았을까?

4.
그는 생각에 잠겼다. 생각할 수도 없이 먼 곳으로부터 무엇인가가 울리는 소리를 들었고, 어떤 음향이 떠도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노래, 인간의 노래였다. 그것을 다시 알게되자 산은 고통스러운 쾌감에 몸을 떨었다. 그는 그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한 인간, 한 청년이 소리에 감싸인 채 대기를 뚫고 햇빛 찬란한 하늘로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파묻혀 있던 숱한 기억들이 깨어나 흔들리며 굴러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검은 눈을 가진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그 눈은 윙크를 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소원을 하나 말해 보지 않을래?'
그가 하나의 소원, 비밀스러운 소원을 말하자, 까마득한 옛날에 잊혀진 일들을 생각해 내야 하는 고통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 그 산과 평지는 허물어져 하나가 되었다. 팔둠이 있던 곳에는 끝없는 바다가 펼쳐져 쏴쏴 소리를 내면서 물결쳤다. 그 위로 태양과 별들이 차례로 지나갔다.


2009 0812 꿈길

얼마나 많은 밤이 우리 주위에 있는가!얼마나 불안하고 악랄한 고통의 길을 우리는 가고 있는가! 잘못 파묻힌 우리의 영혼, 영원한 고뇌의 영웅, 영원한 오디세이는 얼마나 깊은 굴속을 가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간다. 우리는 간다. 우리는 몸을 굽혀 진창 속을 걷고, 진흙 속에서 숨막혀 하며 헤엄을 치고, 미끈거리는 불길한 벽을 기어오른다. 우리는 울고 좌절하며, 불안스레 한탄하고, 병으로 시달리면서 울부짖는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간다. 우리는 가고 고통받는다. 우리는 가고 ,스스로를 온통 물어뜯는다.

2009 0812 등나무 의자의 동화

'멍청이 같은 의자놈아!' 그는 외쳤다. '너는 모든 게 삐뚤어진 삐딱한 놈이야!'
등나무 의자는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사람들은 그걸 관점이라고 부른다네, 젊은이'

2009 0812 꿈의 여행

다소 우울한 이 정오에 그는 이미 숱하게 느끼고 생각했던 것을 또다시 깊이 느끼고 생각했다. 자신의 처지가 지니는 묘한 비극적 희극성, 진정한 작가 정신을 은근히갈구하는 자신의 어리석음 - 오늘의 현실에서는 진정한 작가 정신이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기 때문에 - 그리고 옛 문학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높은 교양의 힘을 빌리고 진짜 작가의 언어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임으로써 진짜 문학 작품에 필적하거나 혹은 닮아 보이는 무언가를 생산해 보려는 노력의 순진함과 어리석은 헛수고 - 교양이나 모방으로는 도대체가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것들을.
22 닥터챔프 2011.10.18
21 2011.09.28
20 공주의 남자 2011.09.19
19 로타 2011.06.24
18 Biglietto Per L'inferno 2011.06.05
17 드라마 만가 2011.05.20
16 9회말 2아웃 2011.05.16
15 彼氏彼女の事情 2011.05.09
14 가문의 영광 2011.05.02
13 별빛속으로 2011.04.12
12 Smile You. 2011.04.05
11 Fringe (2) 2010.05.21
10 Fringe (1) 2010.05.19
9 사강 2010.03.18
8 0.1%의 W와 0.9%의 백수, 그리고 99%의 잉여 2010.02.09
7 수레바퀴 아래서 2009.09.03
6 난로와의 대화 2009.08.13
> 난쟁이, 외 2009.08.13
4 오만과 편견 2009.08.04
3 멜랑콜리아 2009.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