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속으로

아이 2011.04.12 17:07 read.232

말하는 자의 세계로만 가득차서 읽는자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불친절하다 평가받지만 시간이 지나면 퍽 마음에 남는 이야기들이 있다. 연애사진이 그랬고, 라스트 데이즈가 그랬고, 흩어진 구름이그랬다. 잔상처럼 남아있는 이미지들은 걸어가고 있는 거리에서, 듣고 있는 노래에서 습한 인화지처럼 새발갛고 섣푸른 빛으로 다가온다. '별빛속으로'를 본 사흘째, 나는 지하철 계단에 널부러져 있는 나비 날개의 조각을 꿈처럼 마주한다. 감기에 부어버린 청각에 닿아지는 현실이 몽롱하게 번진다. 지금 서 있는 이 세계가 꿈인지 눈을 감고 마주하는 저 세계가 현실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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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초월하는 영원한 사랑'을 테마로 했으나 막상 그 사랑의 크기를 가늠할만한 거대한 사건도, 마음의 동요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사랑을 완성하기 위하여 나는 죽음을 선택하네'라는 궤변을 늘어놓을 뿐이다. 왜 삐삐소녀는 도서관 창문에 서서 '흔들리지 않게'를 불렀나. 그것이야 말로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였나? 아니, 오히려 그건 사랑 보단 이념을 산화시키기 위한 젊음의 결연함쪽에 가깝다.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이런 식이다.  수지가 수영을 만난 이후,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혼자 추는 왈츠처럼 설명없이 늘어선 이미지의 연속이다. 그녀는 수영을 생각(하는지 어쩌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생각하고 있다'라는 것으로 디렉팅을 했겠지만 수지 역할을 맡은 누님이 평면TV처럼 연기를하셔서(..) 표현이 안된거같다고 추측됨) 하며 방안을 걷고, 공상을 하듯이 노트위에 남자와 여자의 키스를 그리는데, 그녀의 행동이 수영을 생각하는 과정이라 전달하는것은 서사를 이끄는 친절한 이야기꾼에 의한것이 아닌 멜로 영화의 공식을 따르는 관찰자의 상상력에만 의지된다. (여주가 쉬는시간에 생각하는게 남주밖에 더있겠나? (웃음)) 과외선생님과 제자의 담백하고 어색한 첫 인사 외에 사랑에 빠지게 될 간지러운 추억거리 조차도 제시하지 않는다. 격정적인 감정도, 깊게 결여된 결핍도 없다.


수영의 이야기 또한 그러하다.불투명한 신비감으로 가득한 괴짜여고생을 어느샌가 좋아하게 된다지만. 그녀가 그림을 들키고 울며 뛰쳐나간 후, 그는 방 안에 남겨진 채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지 그녀가 나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사실관계를 사고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이 불편하고 답답한 감정을 벗어버리고 싶다는 마음뿐.  그래서  '감당할수 없다'라고 서투르게 마음을 표현할 뿐이다.  그런데도, 그런 감정이 얼마 지나지 않아 " 너를 사랑하게 되었어. 그것도 죽음을 초월해서! "라고 주장을 하니 이 얼마나 억지스러운지 (웃음). 죽음과 사랑의 관계를 고집스럽게 엮으려고 애쓰던 삐삐소녀는 또 어떠한가.  그녀는 자유를 갈구하지만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죽은 애인을 쫓아갔던가, 자유를 부여하지 않는 세상을 떠나기 위함인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어리숙하고, 단단하지만 여며지지 못한 감정들이 툭툭 불거나오는 공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스무살의 소년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첫 월급으로 장미꽃 10송이를 산다. 코끝을 스치는 풋한 장미의 향. 빈 소주병에 하나씩 하나씩 장미 송이를 꽂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니. 그곳은 어느새 발간 빛이 노르스름하게 번지는 살롱이 된다. 라디오에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자 우당탕 달려들어가 녹음 버튼을 누르고, 걸어놓은 옷과 함께 빙글빙글 춤을 춘다. 천진함이 가득한 스무살, 그의 어깨 위로 장미꽃잎들이 낱알처럼 퍼질때 아득한 과거로 밀려난 기억들이 가느다란 비가 되어 토독토독 쏟아진다.  아름다운 장면이다.



사는게 꼭 꿈같다. 아니, 거짓말같아. 라고 어른이 된 그가 이야기 한다. 스무살이었어도, 오십이 되었어도. 여전히 꿈꾸듯 삶을 살아간다. 그 이계를 잘라놓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담담함이야 말로 인간을 현실에서 '덜' 도름질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나는 지금 꿈의 오르막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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