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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2012.05.03 17:56 read.180

부싯돌로 날이 선 면도칼을 조각조각 부시기 시작한다. 자각자각거리는 마찰의 소리가 바닷가의 식은 모래를 두손에 그러쥐는것처럼 미지근하다. 소금처럼 가느다란 알갱이지만 빛깔은 흡사 흑연과 수은을 섞어놓은것 같다. 조각하나로는 파르거리는 경동맥을 잘라낼수 없다. 쉬운 풀이를 하기 위해 미세한 가루 한톨을 혀끄트머리에 걸어놓을 뿐이다. 누군가의 타액이 옮겨왔을 찰나에 목구멍으로 들어가도 괜찮다. 인지하지 않을 시간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겨우 숨구멍을 틀어쥐는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없는 용기를 쥐어짜기 보다는 의도하지 않은일로서 행위를 선택당하는것이 더 쉬운일이니까.


반대편에 앉아있던 이가 이마를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움직일때마다 목덜미에 걸려있는 하얀 옷자락이 지면에 걸린 희뿌연 안개처럼 소리없이 바스락거린다. 무엇인지 알수없는 묵묵한 습기가 걸린 눈두덩이를 부비며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욕구에 사로잡힌건 언제부터 였을까. 갑옷같은 상냥함으로 위장한 볼우물을 깊게 패어놓으니 언제부턴가 그곳엔 아무것도 자라지 아니하였다. 나의 우물에 쇠빛 가루를 풀어내었다. 뭉쳐진 가루들은 가릉거리며 중심부를 향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하던것을 멈추고 시커멓게 달아오른 뺨을 만져보았다. 다시 웃음이 터져나온다. 손톱끝의 살점처럼 건조하게 더듬거리는 소리가 마음에들지않아 입술을 틀어막았다.


그가 다가와서 나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며 속삭인다. 이제 다시는, 다시는.  머리카락이 송곳처럼 나의 손바닥을 찔러대는것을 느끼며 그의 뒤통수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중얼거린다. 이제 다시, 다시. 그는 고개를 들지않고 다른 손으로 나의 다리를 만지작 거리며 흐느꼈다. 그건 운다기보단  숨을 쉬는것에 가까운 행동이였다. 아이처럼 등뼈를 더 구부정하게 웅크리며 더 깊게들이마신다. 하나에 시작, 또하니에는 끝을 메달아 놓으며. 잘 닦아놓은 과수원의 사과를 수확하듯 나는 가볍게 그 시작을 취하고 폐기물같은 끝을 허리춤에 갈무리하였다. 그가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이제 괜찮은거죠? 나는 웃으며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아무렴 어때요? 잘근잘근 씹어낸 아랫입술에서 검붉은 피가 터져나와 이물처럼 그의 새하얀 어깨를 적셨으나 다른 한켠에 스며드는 이몽의 환류를 맞이하는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것 같았다. 다행이다. 조근거리는 안도를 기쁜 시계로 포장하며 고양이가 그러하듯 가릉거리며 품을 찾아 부비는데 아뿔사, 내가 먹어치운 반대팔이 텅빈 소매속에 자취를 감춰버렸음에 그 나풀러리는 옷자락이 휘감치듯 나의 목을 조이기 시작하는것이다. 힘들게 갈아놓은 것을 다 쓰지도 못하고,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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