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만가

아이 2011.05.20 17:57 read.255

1. 로맨스 타운


흥미로운것 하나.


아버지는 아들을 '버릇없는 애새끼'라고 훈계하지 않는다. 혼외정사로 낳아온 핏덩이를 자신의 아들 밑으로 편입시키는것(내 아들 말고 니 아들 해라)을 거래할만큼 뻔뻔하기까지 한 그에게 순수하게 아들의 미래를 기원하는 부성애가 있을리 만무하다. 아버지가 원하는건 아들의 굴종이다. 혈연관계에서 비롯된 '사랑'의 위력으로 굴복당하는것이 아닌, 그의 권력과, 돈의 위력으로 쟁취할수 있는 승리. 아들이 반항하고, 거부하고, 날뛸수록 아버지는 더 즐겁기만 하다.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떨어진후 맛보게 되는 좌절과 절망은 깊을테고, 그만큼 자신에게 다가올 그 승리의 쾌감은 더 클테니까.


뭐든지 자신의 그늘 아래에 놓여야 직성이 풀리던 아버지의 통치아래 별다른 반발없이 '따르기만 했던' 아들이 감히 열망했던건 넓은 세상을 향한 탈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인간의 당연한 욕망으로 혐오해 마지 않던 아버지의 '거래'의 꼬리를 붙잡았던 그의 선택은 빠져나갈수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숲 사이를 돌아다니던 사슴의 다급함과 닮아있다.


그런 그가 완전히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돌아온후 정식으로 아버지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명목은 자신의 감정적 은신처를 언제나 그렇듯 '마음대로' 짓밟아 버린 비 인간적인 행동을 단죄하는것. 하지만, 그 일이 발생되지 않았어도, 이 대결은 필연적으로 언젠가는 일어날수밖에 없던것이다. 그렇다면 대결의 흐름은 어떻게 이어지나? 깃 빳빳하게 세운 드레스 셔츠를 날리며 (덧붙여 좌군 우군 쫙 호령하고) 등장한 여느 부잣집 도련님의 전지전능한 능력처럼, 손가락 몇번 튕기기로 모든걸 다 평정하게 되었을까? 순진한 기대를 단숨에 날리듯, 몇십분도 할애하지 않은 1회전은 결국 승자의 길은 기득권을 가진 아버지에게 쉽게 열리게 됨을 알리며 종료된다. 폭삭 주저앉은 주식 시장에서 휴지 쪼가리가 된 자신의것을 망연하게 바라보는 아들은 애처롭고 불쌍하기까지 하지만. '돈 빌려줄 필요는 없지만 내가 돈 없다는건소문내지 말아'라고 못을밖는 말엔 아비에게 그대로 물려받은듯한 찐득한 성향이 묻어나온다. 닮은듯 하면서 닮지 않은듯한 비틀린 부자관계는 일방적인 애정과 집착으로 얼룩진 부자관계의 대립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지닌다.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아비의 입에서 투박한 '너를 강하게 하기 위해 내가 벼랑에서 떠밀어 버린거다!'라는 고백이 나오게 된다면 그것 또한 고리타분한 자식사랑의 변주곡이 될 듯하지만. 어찌되건, 여섯개의 언덕을 지나고 있는 지금 그들의 싸움은 아직 굳어지지 않은 아교풀을 손바닥으로 잡는것처럼 뜨끈하니. 두고 볼만 하다.


-
킁킁 목덜미에 코를 밖으면 터져나올 사람 냄새는 순금의 아버지에게도, 부동산에 붙어있는 높고 높은 집 사진을 보며 엄마생각에 엉엉 우는 순금에게도, 복권 한장에 아웅다웅하는 식모들에게도, 트로피에게도. 한량의 삶을 유쾌하게 즐기는 영희에게도. 모두 물씬 스며들며, 사랑보다는 증오와 안쓰러움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불완전한 감정으로 이 이야기를 삶과 가장 가까운 경계로 끌어당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모방'은 어느쪽에 손을 들어줄까. 완전무결하게 등장한 인간의 장애물 없는 승리? 그것도 아니면,'욕망에 꿈틀거리는 전차'가 되어 돌진하는, 번들거리는 인간의 두 눈동자에?


답이 없다. 不正이 아니라 不定.






- 옥상에서 이야기 하던 건우와 아버지의 뒷모습, 순금과 건우가 대치하던 거실에서 짤막하게 톡톡 밀어넣는 동작의 첨가. 어디서 많이 본거 같아. 마치 전생의 첫사랑을 용산역 직통 3-2 앞에서 우연히 마주쳤을때 들던 애매하고 야릇한 기시감같은느낌. 고개를 갸웃했는데. 알고보니 PD선생님 미굿 하시던 양반이였다는(!) 남주와 여주가 밀도있게 대면하는 씬을 섬세하게 잘 그려내신다. 그런데 작가가 숙향누나이기까지 하니(운다) 치맥보다 더 좋은 조합. 좋아요 (녹아드는)

- 숙향누나도 말장난 가다로는 타고나신 선수시라, 인물들이 팽팽한 대거리를 할때도 쫀쫀한 고무공을 주거니 받거니하듯 착착 감긴다. 격정적이지 않음에도 마음을 울렁울렁 도발하는 기술을 '담백하게' 구사할수 있는 몇 안되는 양반중 하나.

- 파스타는 정말 보고 싶었는데, 주요 배역들의 캐스팅이 도저히 나의 세계로 유입될수 없는 인류들이라 (특히 알 형님은 맨입으로 보기가 힘든 유들유들한 오일리를 타고나신듯) 그것도 패스. 그러고 보니 이런식(배우 편식)으로 시청 패스 하는게 좀 있는듯. 희정누님의 초기작인 내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진실 누님빼고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죄다 거부반응이 나서 아직도 볼 엄두도 못내고 있다.




2. 최고의 사랑


재기발랄한 패러디와 유쾌한 캐릭터들의 융합은 자매님들이 가장 잘 우려낼수 있는것들이라. '몰락한 연애인과 톱스타와의 곡절많은 연애담'이라는 단순한 액션아이디어 만으로도 열여섯개의 시간을 꽉꽉 채울수 있음을 믿고 또 기대하고 있다. 다만, 이번에도 부디 용두사미가 되지 않기를. 이번엔 정말 마음을 다해 진지하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 효진누나는 정말 뭘 해도 잘 한다. 가 아니라 자기한테 뭐가 제일 맞는건지 잘 찾는 혜안을 가진듯. 이번엔 튀지 않는척 능글능글하게 잡초처럼 살아가는 퇴물 연예인을 창조했다. 속상해서 우는 표정 하나까지도 얄미운듯, 불쌍한듯 그 사이를 살짝살짝 넘나들게 양념을 첨가해놓는다. 똑똑한 배우다.

- 역시 여자들을 후리는건, '완벽하지만 어딘가 내가 채워줘야할것같은 1%의 어리숙함은 남겨둔' 윤필주같은 인간이리라. 좋아하고 할줄아는건 공부밖에 없었으니, 사랑도 그 무엇도 개척되지 않은 불모지의 남자. 아버지가 선물해준 만년필을 잃어버렸지만, 잃어버린 사람이 더 속상해 할까봐 몰래 다른걸 사서 찾았다고 안심시키는 거짓말까지 (그것도 몹시 어설프게) 하는 상냥한 성의까지 갖췄다.

하지만, 그 안에서 전혀 밀리지도 꿀리지도 않는 독고 진은 정말 무섭고도 무서운 사람! 내 첫사랑이 너같은 찌질한 여자라 수치스러워, 라고 입밖으로 투덜거리면서 정작 거절당한 이후에 '눈코입이 다 없어질것같았지만 잘 극복했어-'라 혼자 토닥거리던 '귀여움'은 느끼형님(뭔가 이름을 말할수 없게 만드는 오일리함)만이 할수 있는 것일까. 잘한다, 잘해.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는중






3. 49일



통째로 보진 않고, 듬성듬성 보다가 마지막회를 봤는데. 기함했음. 지나가면서 봐도 너무 허접해서 눈물이 앞을 가리던.


눈물을 얻어 살아났지만, 결국 죽여버린 지현의 '끝'을 이 이야기의 패인으로 돌리고 싶진 않다. 육체로 돌아온 자신의 앞에 던져진 '넌 이제 또 죽는다'란 운명을 너무나도 순순히 받아들이는 지현의 태도 또한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 이야기의 또다른 주 메세지가 '죽음의 경험으로서 삶을 귀중하게 받아들이는'것이라 하니까, 지현의 죽음은 결론으로 향하기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는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것 또한 탓하는것도 아니다. 마지막까지 해결의 손길을 기다리던 잔여 장치들을, '정해진 결말'이란 명목 하에 너무나 성의없고 재미없게 접어버린 창조자들의 매너없는 마무리를 걸고 넘어지는것이다.


가장 중요하게 정리했어야 할 것들을 엉성하게 내려놓은채 마지막 언덕을 내려가고 말았다. 잘못된 선택을 유발한 배경들 - 민호의 부모, 인정의 가정환경과 비틀린 질투심 등 - 을 보여주는데 할애한건 역사스패셜에 등장하는 재연드라마처럼 팟팟 터지던 플래시백 몇개가 전부다. 잘 닦아놓은 돗자리 위에 (열 착착 맞춰서) 올려놓은 피크닉 그릇들을 다시 하나씩, 차곡차곡 포개서 넣지 않고 돗자리 째로 후다닥 감싸서 집어넣으며 우리 이제 소풍 끝났어요!라고 허겁지겁 외치는것처럼 갑작스럽다. 이러니 삶에 대한 위대한 감사를 느끼려다가 푸시시시 마른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애매하게 누워버릴수 밖에. 이 실망감은 초창기의 꽉 들어찬 밀집감을 마주했을때 느끼던 감탄과 만족감때문에 더 크게 다가오는듯 싶다. 별다른 애정과 관심이 없던 나같은 이가 이런데, 몰입해서 끙끙 앓던 이들의 상실감은 얼마나 클꼬. 심심한 위로를 드리는 바다. (몇번 당해본 입장으로 남일같지 않다. 그래도 드덕 씹몇년사 통틀어 가장 그지같은 결말로 뒤통수 후려갈긴 성균관스캔들보다는 개중 낫다고 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누구들의 예상처럼 캐스팅된 배우의 인지도에 따라서 마무리의 지분을 나누어 주는것이 맞다면,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주요배역'을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 하지 싶다. 어떤 배역은 산을 타고, 또 어떤 배역은 싱겁게 개과 천선 하고, 또 어떤 배역은 '진짜' 주인공들을 위해 퇴장해야 하는 운명이 처음부터 '지명'되어있었다니 어찌보면 꽤 잔인한일이다. (그래서 지현이랑 이수가 제일 불쌍하다며)


- 서지혜 너므너므 이쁘다. 화면 볼때마다 감탄하고 또 감탄. 연기도 개중 제일 잘하는데, 운이 잘 안따라 주는 듯. 나중에 임주환시랑 둘이 사극 하나 찍으면 괜찮을거같은데


- 아, 임주환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군 생활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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