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020

아이 2016.10.20 13:53 read.20


1.
우울하고 슬프고 괴롭고 기운이 없다. 일이 쏟아질때는 태풍에 스쳐가듯 정신없이 보내니까 그럭저럭 버틸만 한데 한껏 털리고 난 이후에 몰아치는 피곤과 함께 밀려오는 허망한 생각들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사람들을 향해 억지로 웃고 즐거운듯 얘기하고 아무렇지 않게 얼굴을 들고 있지만 막상 방안에 혼자 누워있는 시간이 되면 밀려오는 무거움을 어찌할바를 모르겠다. 슬프다. 너무너무 슬프고 괴로운데다가 이 어떠한것들을 쏟아낼 곳이 없어 외롭다. 그냥 외롭고 허망하다. 나는 뭘 위해 사는건가. 다른 사람들은 '날 위해' 살아주고 있다고 열심히 얘기하던데, 난 그러저러한것들 잘 모르겠다. 행복한것도 모르겠고 즐거운것도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내가 그 사람들 한테 이야기하는 '즐겁고 행복한것'들은 죄다 꾸며낸거라서 진짜가 아니다. 그들에게 차마 솔직하게 얘기할수 없었던것들은 난 지금 너무 불행하고 지치고 피곤해서 그냥 다 놓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든다는거다. 물론 이런것들을 그들 앞에서 풀어놓을 생각은 없다. 그냥 슬프고 외롭고 괴로운것들에 시달리고 있는 내 어깨죽지를 물어뜯어 피라도 내면 좀 나아질까 하는 것 뿐이지.

2.
부모님에게 전화할때는 부모님에게 기운을 드리기 위해 열심히 즐거운 연기를 한다. 남편에게는 나름 피곤한것들을 풀어내려고 하지만 어차피 그도 타인이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쏟아내는게 무의미하다는것을 깨닫고 더이상 이야기 하는걸 관두기로 했다. 지인들에게는 힘들고 솔직한것들을 이야기하는게 서로의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걸 깨닫고 농담으로 무장한 안부인사들만 건네기로 했다. 이런것들이 주변의평화를 지키는데 도움이 된다. 그냥 나 혼자 이러한것들만 단념하고 감당하면 되니까 그들에게 시푸르딩딩한 단어들을 쏟아내는건 참기로 하자. 그냥 난 슬프고 외롭고 괴롭지만 그들의 눈에는 잔뜩 건강하고 즐거운 사람으로 비추는것이 세상 평화를 위해 좋은것이다. 밥을 먹는 행위가 잔뜩 예민하고 스트레스가 가득한 나의 위장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데도 회사 인간들에게 구구절절한 이야기도 꺼내기 싫어서 그냥 먹는 척 한다. 그냥 입다물고 참으면 조용하게 지나가니까 그게 더 편하다. 이젠 싫은것도 돈 버는 일 카테고리의 하나로 묶어서 취급하니까 그럭저럭 또 버틸만해진다. 어차피 안되는거면 포기하는게 편하니까.


3.
스페인의 하늘을 잔뜩 찍어온 여행기를 틀어보면서 가지 못할 것들을 생각해본다. 가고 싶다. 그냥 아무도 상대하고 싶지 않은 어딘가로 가고 싶은 기분은 가득하지만 갈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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