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갑자기 정리벽이 도졌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만사 귀찮아져서 한구석에 다 몰아넣기 해버렸다고 해야할까. 어느 이유던지 간에, 정리는 참 신성한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질들을 하나하나씩 집어넣으며 그 형체와 수반되었던 지나간 시간을 곱게 같이 넣어놓는 행위는 기억에 대한 일종의 예우다. 그저 아무런 의도가 없을지라도, 기록의 채집은 8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내게 관계했던 세상의 속성을 노출시켰다. 이것 만으로도 이 단순한 노동은 가치가 있다.
2.
시간을 낭비하고 살고 싶지 않지만, 시간을 낭비하고 있고. 방향을 정비해야 하지만 방향을 염두하지 않고 걷는다. 집착했던 운동과 소원해지고, 새로운 화두가 등장하여 정신의 노동력을 탐한다. 애증의 삼각관계나 헤겔의 정반합처럼. A와 B를 투입한다고 해서 손실없이 A와 B를 그대로 낳아줄수 없다. 모호한 삶. 8년전의 열아홉 내가 그랬고 8년후의 스물일곱의 내가 그런다. 12시에 걷는 그 위태로운 길 위에서 간신히 숨을 쉴수 있는 내가 가련하다. 이렇게 밖에 '지탱'할수 없는건, 선천적인걸까 후천적인걸까 내게 이런 형질을 물려준 부모를 원망해야 하는걸까? 아니, 그게 아니다. 비극이고 나쁘고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희미한 자욱만을 남기고 사라질뿐, 나는 모든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아프고 슬픈것은 이제 폭풍처럼 지나가 버리고, 20대의 후반부에 서있는 나는 잔해속에서 '남은것'들을 찾고있다. 전쟁과 같았던 투쟁은 점점 사라지고, 이 모든것들은 그저 호접몽처럼 존재와 부존재를 혼란시킨다. 답이 없다. 하지만 괴롭지 않다. 결핍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이 결핍이 내 평생의 그림자가 될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