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20101112

아이 2010.11.12 17:37 read.259






큰 맘먹고 한 혈액검사 결과는 오히려 더 상황을 오리무중하게 만들었다. 빈혈도 아니고, 간수치 기타 정상. 혈압도 정상. 눈에 띄는건 백혈구 수치가 낮다는것인데 그건 피로할때 일시적으로 그럴수가 있다 하니 일주일 뒤에 다시 한번 더 해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어투들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전혀 문제될게 없다는게 의학적 소견인듯) 빈혈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냐 라는 궁색한 질문에 실마리 하나 찾지도 못한 나는 2주일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도 (물리적으로 전혀 위치 변화가 없으나) 빙빙 돌고 있는 천장을 받치고 있다. 이와 관계된 증상인지 확언할수 없으나, 신경을 온통 몰아쓰거나, 자판을 치거나, 글자를 쓰는 사이 잠깐잠깐 오른팔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누가 내 몸뚱이 속에 있는 혼을 잡아 끌어서 하나씩 빼어 가고 있는것같다는. 걷다가 다리에 힘이 풀릴때 (가끔) 깜짝 놀란다. 피곤하다는 말로 설명이 안되는 무거움에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 돌아가자마자 잠에 빠져든다. 새벽같이 일어나고 하루종일 꾸역꾸역 돈 벌고 집에가서 뭐 좀 할라고 치면 (긍정적인 저작물 섭취나 학업 생산활동 따위를) 몸이 나를 짓누르니 아무것도 못하고 돌아버릴지경이다. 생때같은 나의 시간을 이렇게 날려보내고, 줄어드는 시간을 '관망'하는 기분은 나를 더 절망하게 만든다. 내게 미래는 있는것일까. 나에게 미래는 있어야 '하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관대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어쩌면 스스로에게 너무나 모질게 굴고 있는지 모르겠다. 줏어담는 풍문에 X와 같은 금전과 P와 같은 시세의 인력시장에 대한 현실을 감내하는것이 자신없다. 나는 몸뚱이를 혹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너무나 가혹하게 힘에 부치는걸까. 힘들다는 표현을 '감히' 묘사함에 있어서 거듭되는 죄책감을 끌어않는다. 몸으로 하루벌이하는 노동자들에게 나는 지렁이의 꼬리조차 되지 못하는 한량한 인감임에 틀림없으니까. 정신을 세우고 있는 시간동안 내 손을 '지나가는' 일에 대해 타인이 부정적인 언사를 내지르는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나의 신경증탓에, 나는 '싫어 죽겠는'일을 세상 누구보다 애를 쓰며 하고있다. 말을 하고 있는 나의 목소리,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합세하는 단어들이 나의 '실제적인' 세포를 메우고 있다. 이렇게나 열심히,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이 애쓰며 '나'를 사용하고 있는데, 나아지는건 하나도 없다니. 나는 이렇게 아득부득 질주해도 절대 이것으로 행복해질수도, 더 큰것을 가질수도 없다. 내가 '환멸'을 느끼는 부분을 하나라도 상쇄시킬수가 없다는 판에 박힌 결과가 이렇게 눈 앞에 뻔히 보이는데도 (열심히 하나, 열심히 하지 않으나 결과는 같다는 현실) 이 일을 견디고 있다.



육체적인 병원을 가야하는것 보단, 정신적인 자세를 메우는것이 더 필요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육체의 병원을 가는걸 더 망설이는것일지도) 일이 너무나 싫어서 곪아버린것이 터진건지, 정말 의학적으로 형질이 뒤틀려서 발현한 질병인지 나 스스로조차 자신이 없다. 어쩌면 가장 큰 문제는 궁극적인 목적의식을 잃어버린것일지도. 나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채 길에 떨어진 쿠키를 줏어먹으며 걸음을 걷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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