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후기

아이 2014.10.17 15:41 read.60




전쟁..까지는 아니지만 투쟁과 스트레스 및 타임테이블with 영수증 으로 점철된 결혼식을 마치고 앉아서 겨우 숨을 돌리게 되기까지 약 3주의 시간이 걸렸다. (물론 집은 아직도 수습해야할것이 쌓이고 쌓인 전쟁터지만T_T) 여하튼, 27일에 가슴팍을 꾹꾹 조이느라 숨도 못쉬는 드레스를 입고 허여멀건한 의자에서 동물원 원숭이 미소질 하느라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고, 그렇게 염원하고 고대하던 스페인 땅에 가서 있는고생 없는고생 하면서 눈물도 뺐지만 ^_ㅠ 돌아보니 죄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포장하는게 인간의 재주인지라, 돌이켜보면 여행은 (하나도 고생스럽게 구상하지 않았다는 나의 주장은 한톨 부질없는 맹서일 뿐이였음. 나 조차도 막날 도보일정에 지쳐서 오후엔 항복선언을 ㅋㅋㅋㅋㅋㅋㅋ) 재밌는 일도 많고 신기한 일도 많았다.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 프리힐리아는 통영 벽화마을의 뭉글미지근한 실망을 주었지만 (어딜가나 장사꾼들이 점령하는곳은 매력이 없다는) 그라나다의 변태스러운 매끈함과 무시무시한 집시누님들이 튀어나오는 골목으로 가득한 거리는 아직두 아쉬움이 많다. 생각나. 다시 가고 싶지만 살아생전에 14시간 (대기시간 포함) 비행기에서 멀쩡한 육체와 정신상태로 버티기 어렵다는 (+ 존나 돈두 많이 들엉..) 현실의 장벽에 밀려서 그저 아쉬운 마음만 가질뿐. 세비야는 구경한 것에 대한 깊은 인상은 없지만 시간이 너무 짧아서 다 못돌아 본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아서 생각나고. (그라나다에서 버스 놓쳐서 2시간 대기탄거때문에 일정이 죄다 밀림) 아, 바르셀로나는 무섭지만 무서운만큼 호기심도 많은 동네. 숙소가 좋아서 그런가 받은 느낌은 편안하고 깔끔하고 좋다는. 다음에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ㅋㅋㅋ (다음엔 1박에 30만원하는 호텔에 갈수는 없잖) 여하튼 일주일동안 뽀지게 놀고 오니 쌓인 책상에 쌓인 업무지시와 600통이 넘는 미확인 메세지들이 나를 반김 ㅋㅋㅋㅋㅋ일주일치 업무를 해야하는건 각오했지만 막상 마주하니 그것들을 어찌해야할지 몰라 망연자실 상태ㅋㅋ 거기다가 상관께서는 일주일치 해외출장중ㅋㅋㅋ 복귀시 깨지지 않기 위해서는 더 빡시게 업무대리까지 돌려야했...9일이 빨간날인건 정말 나 죽지 말라고 하늘에서 내려주신 숨구멍이였다고 생각ㅋㅋㅋㅋㅋ 그날도 (개노무-_-) 냉장고 배송 받고 본가에있는 내 짐 싣고 오느라 반나절을 죽어났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아 ㅋㅋㅋㅋ 여튼 뭐 이래저래 급한건 끝나고 집도 어느정도 사람 사는 꼴을 갖춰놓았으니 마음은 좀 놓이는거 같다.


아직 해야할일은 산더미 (찍어놓은 2천장 사진정리는 손도 못대고 있음)지만 이젠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생각하고 있다. 매일 아침밥을 챙겨먹다가 엄마님이 없는 하늘아래에 쫄쫄 굶고다니는 내 위장은 아직 현실에 적응을 못하지만(T_T) 이것도 뭐 시간이 지나 보면 어느정도 정착하겠지. 진짜 아침에 일어나서 밥 하고 출근하는 어머님들 대단하심 (거기다가 애기까지 으앜) 남편의 여동생님도 워킹맘인데 (나랑 비슷한 또래) 진짜 존경스럽다. 애기도 키우고 살림도 하고 돈도 벌고. 결혼하는 오빠님의 두루한 상황 파악에 네고시에이터 역할까지. 대단. 역시 나는 아직 어른의 역할이 몸에 베이지 않은듯 이 모든 일련의 과정에서도 뜻대로 되지 않는것들에대한 지극한 스트레스때문에 정신 (뿐만 아니라 몸)에 병이드글드글 차올라서 어쩔줄을 몰랐는데. 나도 불완전한 부분을 상대방에게 어필하지 않는 인간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괴로운 상황이 되면 가까운이들을 너무 괴롭히는 성향이 커서. 준비하는 동안 너무 힘들고 정말 그만두고 싶은 지경도 많은데다가. 아버지 엄마 일때문에도 힘든 상황이 많았는데 (그건 그분들의 잘못이 아니지만) 도저히 앞에서는 힘든걸 내색할수 없어서 남편에게도 많이 화를 내고. 남편에게 퍼붓기 어려웠을땐 M에게 많이 퍼부으면서 풀었다. 혼인식날 M이 축의금 봉투에 장문의 편지를 써주었는데. 그동안 내가 구구절절 M에게 쏟아부었던것들에 대한 코멘트가. 자신의 불만이 아닌 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차 있어서 읽고 나서 호텔방에서 찔끔찔끔 울었다.

솔직히 결혼식이라는건 대외적인 과시목적 (부모님들의 욕구충족)이 큰 부분이 있어서, 식장이라던가 뭐 기타등등 잡다한건 그냥 무난한걸로 맞춰드리느라 나의 취향이 난입할 겨를이없었다. (내가 선택 곶아라서 귀찮음에 상황을 회피한 이유도 있..) 찍힌 사진들을 보니 식장은 역시 구렸 (눈물) 드레스나 화장은 평이 그럭저럭이였는데 평소에 내가 화장을 거의 안하고 다닌것만 보다가 그날 장식품으로 포장된 나의 꼬라지를 본 많은 이들이 중, 사촌동생 A는 혀를 끌끌차며 신부화장은 사기라는 명언을 남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여사님은 본인 친우들 및 친지들이 너무너무 이쁘다고 했다고 나를 위로하시긴 했지만 촬영된 비디오로 본 나의 돼몸은 역시 슬플뿐 (막판엔 스트레스 때문에 치맥과 치맥으로 하루를 연명했) 이젠 지나버렸으니 무슨 소용이랴ㅋ 그래봤자 다들 기억하는건 그 식당이 밥이 맛있느냐 구렸냐가 문제임..아 그리고 엄마얼굴 보고 눈물 짜다가 나중에는 마구마구 웃어대는 미친 신부의 멘탈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때 난 이미 장기간 러시에 지치고 피곤해서 아무생각이 없었....도대체 누가 결혼식을 신부의 날이라고 하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피곤하고 발아프고 밥도 못먹는 개고생인데..

다른건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인천까지 찾아오느라 고생한 사람들한테는 정말 미안하고 고마웠다. 평소에 예의상 내뱉은 감사가 아니라 진짜 입장바꿔서 휴일황금시간대에 한시간도 넘는 거리를 왔다갔다하는게 보통일은 아닌데다가, 진짜 형식적으로 하는 코맨트가 아니라. 진심으로 축하하고 잘 살길 바란다는 친정 누님 형님 모드의 양반들을 보니 고마워서 몸둘바를 모를지경. 일년에 한두먼 얼굴 보는 고등학교 친구인데도 그 머나먼 (서울 북쪽 끝)에서 인천까지 혼자 와서 진심으로 (진짜 진심으로) 축하해준 서닝한테 특히 너무 고맙고 (봉투에 쪽지 넣어준거 보고 너무 뭉클했다) 밥도 제대로 못먹고 갔을텐데도 괜찮다고 신경쓰지 말라고 이야기해주는 그녀는 천사ㅠㅠㅠㅠㅠㅠㅠ 학교다닐때 서닝한테 엄청 치대고 살았는데 늙어서는 막상 치댈일이 없어서 많이 봇보고 살았는데 다음주에 만나면 맛있는거 맥여야지 ㅠㅠㅠ 야매 친정오빠들과 함께 일잔하고 싶었는데 결국 못해서 너무 죄송했 (먹을려고 차까지 돌려 왔건만) 학교 동기들도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S양은 내 친구도 아닌데 애인님 따라 멀리까지 와줘서 미안했다 ㅋㅋㅋ 모임에서 농담으로 부케 받으라고 했는데 진짜 부케를 받아버린 후배L군에겐 진짜 너무 미안함 ㅋㅋㅋ 난 너무 재밌었는데 당사자는 당황했을 ㅋㅋ 재밌게 살려줘서 고마움. 신혼여행 가는데 비상약 없다고 살뜰하게 챙겨준것 덕분에 진짜 잘 썼음 이 보답을 어찌할꼬ㅋㅋㅋ 결혼 선배님의 입장에서 이것저것 좋은 얘기 많이해준 부천친구님도 너무 고맙고 ㅠㅠㅠ 새벽일 때문에 잠도 못주무셨을텐데 멀리까지 오셨던 J선배님도 너무 고맙고ㅠㅠㅠ H언니님도 고맙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C 선배님도 감사함ㅋㅋㅋㅋㅋㅋㅋㅋ CC라 그런지 내손님 = 남편손님 구분이 별로 없어서 남편 친구님들에게도 돌아다니면서 인사하니 다른사람들이 내 손님이라고 생각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들은 내게 신부가 아니라 오비모임에 만난 후배마냥 술을 권할뿐이고ㅎㅎ


이래저래 신경쓰고 곤두섰던 일들이 지나고 나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려서 허무할지경이다. 두어번 행진하고 인사하고 사진 팡팡 찍어대고 정신차려보니 베스트웨스턴 11층이였다는 ㅋㅋ 또 정신차리고 보니 바르셀로나 공항.. 휘까닥 하다가 또 정신을 챙겨보니 신도림 역 만원 지하철 안이고. 언제 이 전쟁이 다 끝났는지 모르게 새벽바람 맞고 기어나와 일나와서 퇴근하는 일상이 이어진다. 정말 별일이 아니구나 라는 기분이 든다는.


2.
생활패턴이 다른 두 사람이 사는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걸 깨닫는다.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는 10년의 세월동안 좁혀지기 어렵다는 나는 정말 난해한 인간이라는걸 알지만 그걸 '세속적인 기준'에 맞추는게 정말 버겁다. 이 와중에 나의 곤란한 예민함을 받아주는 남편은 얼마나 피곤할까 싶은.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지만 뜻대로 안되면 (제발 포도껍질은 먹고 바로 치우라고 버럭버럭) 속이 뒤집혀져서 마구마구 왈왈하고 만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는걸 아는 바, 나는 내 자신의 활화산같은 습성을 잠재워야 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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