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년 휴가를 그럭저럭 보내고 나고 몇날 몇일을 끙끙 앓는 짓에 지겨워져서 이번에는 뭐든지 다 해볼거다 라고 마음먹었다. 푼돈이 흘러가는 아까움에 전전 긍긍하는 고민은 집어치운다. 지금이 때가 아닌 이상 평생 가도 나는 무얼 하지못하리라. 개미같이 차곡차곡 쌓아두는 삶이 전부는 아니라고, 나름의 합리화에 둘러쌓인 어린아이가 속삭인다. 마음먹은 날은 29일. 하지만 나는 27일 되서야 겨우 기차표에 서명을 할수 있었다.
2.
그 새벽에 여자 혼자 (여기서는 '혼자'라는 명사의 기본 수식에 몹시 편향된 성적기준이 존재하고 있음을 우선 덧붙인다) 밤길을 쏘다니는 것에 서브 보호자인 K는 머리가 돌았다고 화를 냈다. 해뜨는것을 보기 위해 택시를 탈것이라는 언질에 불같이 화를 내어서 (겁이 많고 귀가 얇은 인류는 이리 쉽게 설득당하는 경향이 있음) 절충하여 택시는 제외하고 버스를 타기로 했다.
해가 뜨는것을 보는게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였다. 사실 처음에는 그것이 목적이였으나, 어느샌가 그런 '목적'이라는것들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중요한건, 나는 마음을 먹었고.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한번도 하지 않은 일을 한다는 것이였다. 복잡한 생각도, 결연도 없이 이 얼마나 목적이 유실된 순수한 행위 지향적인 욕망인가.
3.
노인네처럼 자동판매기 시간을 잘못 눌러 차표를 잘못 끊고, 역무원 아저씨한테 가련한 촌뜨기 고객으로 동정받던 것도. 시큼한 비릿내가 몽글몽글 맺혀있던 새벽의 공기도. 간신히 달려올라간 암자에서 본 노란 해도. 모기들에게 물어뜯기면서도 돌산을 바득바득 기어올라가던 내 두툼한 팔다리도. 끝내 찢어진 내 가방도. 기약없이 오지 않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끝내 고기 찜이 되어버린 내 불쌍한 육신도. 더위와 곤충에 지쳐서 넌덜머리가 나서 죄다 집어던지고 집에 가고 싶었던 12시의 서시장 골목길도. 끝내는 지쳐서 여수역 대합실에 모로 누워 맥주를 들이키던 막장의 낮술질도.
탈탈 돌아가는 선풍기 아래에선 보고싶을정도로 아련해지고 마는.
4.
1) 고무바닥 운동화로 젖은 돌산을 오르는것도 정신나간짓 (금오산에서 유명 달리할뻔했다는)
2) 관광 엑스포따위 유치한다면서 진남관 안내판은 썩어질때까지 놔두는 여수시의 무식한 관광자원관리 센스
3) 나는 정말 자동판매기따위 같은 기계들과는 인연이 없나 보오
4) 여수 사람들 친절하다고 하는 새키들은 도대체 뭘 보고? (무서워서 뭘 물어볼수가 없다는)
5) 그래서 결국 시장에서 바가지쓰고 울며 겨자먹기로 슬리퍼 구입(...)
6) 나이 젊을때 내일로를 꼭 했었어야 했는데.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