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반복

아이 2010.10.25 16:36 read.274






아침에 찜질기를 찾을때만해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게에 가야 한다는 말에 짐짓 귀찮아서 얼굴을 지푸리고 일어났다. 그때만해도 정말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밤새도록 배앓이를 하다가 새벽나절에 겨우 잠이 드셨다고 했다. 그렇게 안좋았으면 병원에 가야하는거 아니냐고 화를 냈는데, 끝까지 괜찮다고 고집을 피셔서 어쩔수 없다고 했다. 나라도 깨우지 그랬냐고 했지만, 운전도 못하는 내가 그 새벽에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 여기서 시커먼 벽 하다를 등에 지었다. 엄마는 계속 괜찮다고 했다. 괜찮다는 말을 거푸 하는게 예감이 좋지 않았다. 가게를 가야하니까. 무슨일이 있어도. 라고 고집을 피시는걸 또 어찌 막을수가 없어서 뒤따라 갈려고 부랴부랴 씻고 나왔는데 맨 바닥에 누워있는 얼굴이 새파랗다. 땀이 한가득이야. 나는 너무 놀라서 어찌할바를 몰랐다. 그런건 처음봤으니까. 저번 입원했을때 빼고는 엄마가 아파서 누워있는걸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나는 너무 놀라서 어찌할바를 몰랐다. 그렇다고 옆에서 앓아누워 간신히 잠든 아버지를 깨울수는 없는 일이였다. 식은땀이 흥건하게 있는걸 수건으로 닦아내면서 괜찮냐고 물어도 괜찮다는 말을 되풀이 하고 가게를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아무소리 말고 한시간이라도 누워있다가 가던지 하라고 화를 냈다. 억지로 침대에 누이고 약을 사러 가야하는데, 시발 날이 좆같아. 하필이면 일요일이라 문을 여는 약국이 없다. 약을 사라고 동생을 채근해서 내보냈는데 30분이 지나서 빈손으로 돌아왔다. 가을인데도 반팔옷에 땀을 끙끙대며 돌아온 애한테 다시 나가라고도 할수 없어서 교대해서 길을 나섰다. 정신없이 뜀질을 하면서도 절대 울어서는 안된다는 걸 다시한번 강박했다. 생각을 해야했다. 무엇이 가장 필요하고 무엇이 가장 최선인지, 하지만 너무나 미숙한 나는 메밀차를 끓이기 위해 물을 반만 끓이는게 나을까 큰 솥으로 끓이는게 나을까 하는걸 한번에 결정할수도 없는 치가 되었다. 예전엔 무모할 정도로 결정을 찍어내렸던거 같은데 언제부터 '이렇게 되면 다치지 않을까'라는것에 우왕좌왕하는 간난쟁이가 된걸까. 화가 치밀었다.그 와중에 울기라도 하면 나는 정말 개병신이 되는거였다.




엄마의 무한한 애정이 자식새끼에게 얼마나 큰 독인지를 깨달았다. 그 모든 시스템이 정지되어있는 광경을 마주하는게 얼마나 큰 공포인지 깨달았다. 그것을 유지하고 있는 두 내외의 존재가 내게 주는 무게와 부재의 허망함을 깨달았다. 끝내는 가게에 가야한다고 채비를 하는 엄마를 말릴수 없는, 허술하고 쓸모없는 나를 깨달았다. 울고 싶다는 기분 보다 화가 나고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과연 누구의 탓인가. 새벽4시에 일어나서 입안에 밥을 넣어주며 금이야 옥이야 키우는 내 부모의 무조건적인 애정탓인가, 개털같이 무능한 나의 탓인가. 전자에 대한 경외를 핑계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자양분의 결과로서 나는 충분히 강건할수 있었으니까. 나는 너무 이 모든것에 안일했다. 평안하고 좋은 자리에 배를 부비고 '내가 죽을때까지 이 모든것을 유지'할수 있다고 자신했던 내가 멍청했다. 막상 체계가 뒤틀리게 되었을때 나는 과연 무너지지 않을수 있을까. 그러지 못하리라는게 나를 80%이상 뒤덮고 있는 생채기의 답이다. 나는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나는 그만 두고 싶어도, 이렇게 '다른 것'들을 핑계삼아 그만두지 못한다.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가지 못하는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그래도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어째서 나는 물질을 가지고 있어도, 이렇게 괴롭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반복해야 하는것일까. 물질로 원하는 바를 다 상쇄시킬수가 없다. 나는 내 물질을 다 털어서 부모에게 줄수도 없고, 내 물질을 다 소유해도 순간에 허덕일 뿐이다. 재물이 필요하다. 벌겋게 달아오른 내 눈이 세상을 휘돌아봐도, 우둔한 나의 손에는 지나가는것이 드물다. 더 많이 벌어야 한다. 부모를 위해서인가. 나를 위해서인가. 어쨌거나 체기에 부어터진 몸을 이끌고 끝내는 일터로 향하는 발을 묶어놓으려면 그만큼 벌어야 하는데, 나는 그걸 현재로서는 감당할수가 없다. 거지같은 일이다. 생각이 가득해도 할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 그저 그러면 그럴수록 내가 숨어지내고 싶은건, 향기로운 비현실일뿐이다. 변하는건 아무것도 없다.  겁과 조급증이 치밀어 올라 얼굴이 시뻘개지는 나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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