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난국, 풀어놓지 못한 과제를 잔뜩 쌓아두고 다른 일주일을 기약해야 하겠다. 전반적으로 11회는 후라이드 반, 양념 반처럼 섞이지 못한 부분이 극명하리만큼 대조를 이루어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면 12회는 소화시킬수 없는 물렁한 우뭇가사리를 섞어놓은듯하야 먹고 싶지가 않아진다. 그래, 문제는 '다가가고자 하는 욕구'가 소멸된다는것이다. 힐링을 표방했으나, 힐링을 원하는 자들 앞에 나열되는 장면은 거듭된 오해, 극단적인 갈등, 치정으로 뒤섞인 대화들 뿐이라면 어느 누가 섣부르게 손을 내밀수가 있을까? 재희는 그 우유부단한 태도로 달이에게 허점을 노출시키고, 달이는 '끝을 모르는 욕망'때문에 재희에게 달려들고, 화영은 사랑이 아닌 집착의 형태로 돌변한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이용하고 또 비난한다. 그들 사이에서 얇은 등껍질로만 무장한 봉선은 난자된채 복구할수 없는 생채기들을 쌓기 시작하고.
3회까지 전개되던 유쾌한 만남과 즐거운 캐릭터들의 터치가. 흑연을 뒤집어쓴 낙서로 바뀌게 된건 어느 시점에서 부터였을까. 분명 6회의 막걸리집에서의 키스도, 8회의 처음으로 차려준 밥상도 문제될것은 없었다. 10회? 하지만 폭로된 비밀이라는 무거운 주제속에서도 유쾌한 터치를 잃지 않았으므로 괜찮은 언덕이였다. 그렇다면 11회? 12회? 그것들에게 모든 탓을 돌리기엔 화영의 캐릭터가 차곡차곡 구축되던 과거의 시간들을 허수로 불수는 없다. 분명 이것은 구축의 단계에서 벌어진 문제일것이리라. 하나의 지점을 찾을수가 없으나, 어딘가에 존재하는 그것.
그러나 더 무서운것은, 이 괴악한(아 오늘은 이렇게 표현이 될수밖에 없나) 판타지를 이해함에 있어서, 쩔어버린 피곤을 떨치지 못하는 무서운 '근성'이 탄생되었다는 것이다. 판타지가 허투르거나 괴로우면 이해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손을 털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미 봉선 (트라우마의 성에 같혀서 오랫동안 파리한 숨을 쉰채 '손톱밑의 가시'로만 살아왔던)에게 너무 많은 부분을 던져버린터라. 그녀가 느끼는 괴로움을 같은 구석에 품은채, "너를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중얼거리는 그녀의 고통을 나의 것으로 가져와 버리고 말았다. 그러므로 피곤을 풀기위해 시청하기 시작한 작업에 심리적 압박감과 노곤함을 느껴도 그만둘수가 없다. 이것은 애정인가 애증인가. 인지세포에는 어느것도 걸려지는게 없으니 판단이 서질 않는다.
너무나 아쉬운것은 극명한 선악의 구도로 향하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무참히 깨어버리는' 작위적인 상황들의 나열속에서, 쉬이 마주쳐야할 재희의 빛을 좀처럼 찾아볼수가 없다는것이다. 분명 이 이야기는 상처를 가진 남녀가 서로의 만남으로 관계 공포증을 치유하고 한걸음 더 성장하는데 의의를 가지고 있다. 주체는 일방이 아닌 '봉선과 재희'가 되어야 하고, 재희는 봉선을 이끄는 중심인물이 되어 입체적으로 봉선의 변화를 도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밀이 밝혀진 뒤 재희의 일련의 태도들은 쉽게 이해할수 없는 일방적인 방식이 많았다. 처음부터 해명할때 '변한것은 아무것도 없어' 라던가, '차순경은 생각이 너무 많아. 간단하게 생각해'라 말하는것이 최선의 방법이였을까?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은 봉선이 아닌 재희로부터 비롯된것이 아니던가.
봉선을 사랑하지만, 봉선을 전적으로 이해할수 없는 재희. 그렇기에 봉선이 세밀한 부분으로 상황을 인지함에도 설득하는 방식은 '우회적인 접근' 아니면 여전한 '간단하게 생각해봐'의 반복에 불과했다. 이 문제적 행동은 2차적인 비밀노출 (화영과의 관계)이 발생했을때 한번 더 등장한다.
봉선 : (울면서 운전중)
재희 : (바라 보면서 점점 눈 붉어짐)
봉선 : (혼란과 분노로 거칠게 운전한다)
재희 : 내가 죽였어.
봉선 : (본다)
재희 : 박대표 남편, 아인이 아빠. 내가 죽였다고.
봉선이 화영과의 관계를 인지했을때 느꼈던 혼란을, 재희는 자신의 과실치사 트라우마를 드러냄으로서 상쇄시키려 한다. 이것은 이유를 설명하는것은 맞지만, 봉선의 입장에서는 맨살에 직접 닿기 어려운 간접적인 의미가 가득하다. 봉선은 그 말로서 재희를 이해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한다. 이런 관계의 뒤틀림에서 갈등의 유발자 (재희)는 여전히 몇마디로 행하는 사실의 제시로서 봉선에게 스스로 자신을 이해하라 독려하고 있다. 봉선이 자신의 세계를 전적으로 인정해 줄거라 자신해서 인걸까? 이 이야기에서는 재희의 성격을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으로 간접적으로 제시한다. 긍정적이고, 밝고, 낙천적이다. 그러나, 그 말의 반대편에는 상대방을 세심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것을 간접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혹자들은 이것을 남녀의 관점차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재희의 방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여지는 여전히 부족하기만하다.
재희에 대한 쓸모있는 묘사와 설명이 부재한 이야기는, 봉선의 입장에서 볼때 재희를 '참으로 나쁜 사람'으로 만들기 충분한 에피들을 남발시킴으로서 갈등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중이다. 오해는 거듭되지만 봉선은 용서했고, 이해하려 '노력'했으며, 고통스럽지만 사랑을 지키기 위해 선택을 결심했다. 결심했고, 그 의지를 지키고자 노력했으나 상황은 끊임없이 그녀와 그의 관계를 재고하게 만들었다. 표면적으로 그들의 갈등을 조장하는것은 화영의 악행이겠으나, 궁극적으로 봉선과 재희의 관계를 어긋나게 만든것은 서로에 대한 '불신' 이다. 그 속에서 봉선은 여전이 안타깝고, 재희는 답답하다. 해피엔딩으로 향하는 상투적인 결말의 고조인가, 다른 의미를 전해줄 폭풍 전야의 고요인가. 남은 3회는 보는 이에게도, 만드는 이에게도 큰 숙제가 될것이다.
1) 재희와 화영 둘다에게 '니들이 뭔데 내 인생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거냐?'라고 일갈한 봉선의 고함이야 말로 노폐물로 쌓여있던 폐부를 뚫어버리려 하는 우리 모두의 탈출시도일지도
2) 화영이 점점 더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음이 안타깝고. 달이를 그렇게까지 '껍질'로 전락시키는게 흡족한 선택이였는지 작가선생님에게 몹시 여쭙고 싶다는
3) 진짜, 이제까지 드라마 여주중에 이렇게 몰입하고 애정하는 캐릭터가 없었던듯. 캐릭터의 의미를 살리는데는 작동자의 능력도 간과할수 없다. 좋아하지만 받아들일수 없는 사람을 생각하며 부르는 이름을 그렇게 시리고 아프게 읊조릴수 있을까. 지아누님 정말 잘해. 잘한다. 이로써 누님은 평생까방권 획득. 누님 사랑합니다ㅠㅠㅠ
4) 재희가 정말 아쉽다. 분명 더 설득력을 부여받을수 있는 가능성은 존재한다. 다만 시간이 문제일뿐. 남은 3회는 재희와 화영의 비정상적인 관계 정리가 주된 내용일 될 터인데, 그 안에서 재희가 자신 (그리고 봉선)을 지킬수 있는 적극적인 행위를 하기를 바란다. 이 모든것들은 재희가 어정쩡하게 그려넣은 관계의 흐지부지한 선에서 부터 시작되었다는게 과언이 아닐정도니까.
5) 잘 보다가 결말에서 뒤집어지는 케이스가 많아서 (그러고 보니 올해것들은 거의 다 그러네) 결말 공포증까지 생기는듯. 이렇게 아끼는데 (무려 조공총알까지 투척했...) 결말이 개 시망되면 나 진짜 홧병 날거같다. 시발, 이래서 농드라는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러나 저러나 뿌리칠수가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아.
6) 은혜로운 봉보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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