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로와의 대화

아이 2009.08.13 10:33 read.352

2009 0810  난로와의 대화




그는 나에게 뚱뚱하고 넓고 불이 가득 찬 커다란 입을 가지고 있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프랭클린이라고 합니다' 그가 말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라고?' 내가 물었다.
'아니오, 그냥 프랭클린입니다. 혹은 프랑콜리노라고도 하지요. 저는 이탈리아제 난로입니다. 아주 탁월한 발명품이지요. 특별히 따뜻하게 해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 나도 알고 있어' 내가 말했다. '이름이 훌륭한 난로는 모두 탁월한 발명품이지. 하지만 난방은 별로야. 나는 난로를 무척 좋아해. 감탄받아 마땅하지. 그렇지만 말해 봐, 프랭클린, 어떻게 이탈리아제 난로가 미국식 이름을 갖게 되었지? 이상하지 않아?
'이상하다고요? 아니죠. 그건 하나의 은밀한 법칙이에요. 아시겠어요? 관계와 보완이라는 은밀한 법칙 말예요. 자연은 그런 법칙으로 가득 차 있어요. 비겁한 민족은 용기를 찬미하는 민요를 가지고 있지요. 사랑을 모르는 민족이 사랑을 찬미하는 희곡을 가지는 것이고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 난로들도요. 이탈리아제 난로는 대부분 미국식으로 불리지요. 독일제 난로가 대부분 그리스식으로 불리듯 말이에요. 그것들은 독일제이지만, 제 생각에는 저보다 난방을 더 잘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이름은 호이레카, 피닉스, 혹은 헥토르의 이별이라고 하지요. 이들은 위대한 회상을 불러일으키는 이름들입니다. 저는 난로지만, 갖가지 특징에 따라 정치인들과 똑같을 수도 있지요. 큰 입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것을 소모해 버리지만 별로 따뜻하게 하지는 못하죠. 관을 통해서 연기를 내뿜고, 근사한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위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거예요. 그게 바로 저의 면모랍니다.'
'정말로' 나는 말했다. '엄청 존경심이 일어나는걸. 이탈리아제 난로니까 그 속에서 밤을 구울 수도 있겠지?'
'물론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소일거리를 좋아하지요. 시를 짓고 장기를 두는 사람들도 많아요. 틀림없이 제 안에서 밤을 구울수도 있어요. 왜 안 되겠어요? 밤이 너무 타서 숯검정이 되기도 하지만 소일거리일 뿐이니까요. 사람들은 소일하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전 인간의 작품이고요. 우리의 임무를 행할 뿐이죠, 우리는 기념물 같은 존재들이에요, 더도 덜도 아니고요'
'잠깐만! <기념물>이라고...... 그렇게 말했니? 자칭 기념물이라고 여기는 거야?'
'그래요. 우리 모두는 기념물이지요 산업의 생산품인 우리는 모두 인간적 특성이나 미덕의 기념물이지요. 자연에서는 드문, 높은 교육을 받은 인간에게서만 있을 수 있는 특성에서 나온 유산이란 말입니다'
'그건 어떤 특성을 말하는 건데?'
'목적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지요. 다른 많은 의미 외에도 저는 그러한 의미에서의 기념물입니다. 제 이름은 프랭클린이고, 난로입니다. 나무를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큰 입을 가지고 있지요. 큰 관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연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가장 빠른 길이에요. 제겐 장식도 있고, 여닫을 수 있는 통풍창도 두 개 달려 있어요. 이것 역시 멋진 소일거리죠. 마치 피리처럼 그것을 불어댈 수 있으니까요.'
'나를 매혹시키는군, 프랭클린. 너는 내가 아는 가장 영리한 난로야. 그러나 원래는 어떤 거지? 난로인 거야, 아니면 기념물인거야?'
'참 많이도 물어대시는 군! 사물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걸 모르십니까? 온 자연 가운데 떡갈나무는 하나의 떡갈나무일 뿐이고, 바람은 바람, 불은 불일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만은 모든 것이 다르지요. 모든 게 의미심장하고, 모든 게 암시적이라니까요! 인간에게는 모든 게 신성하고, 모든 게 상징이 됩니다. 살인이 영웅적인 행위이고, 전염병은 신의 손가락이며, 전쟁은 진화(進化)이지요. 그러니 어떻게 난로가 그저 난로일 수 있겠습니까? 아니지요, 난로 역시 상징이고 기념물이고 예언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난로를 사랑하는 것이고, 경의를 표하는 것이지요. 장식과 통풍창을 가지고 있는 것, 그래서 약간의 난방을 하는 것이 유일한 용도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난로 이름이 프랭클린이라고 해서 안 될 게 뭐 있겠어요.'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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