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아이 2009.09.03 10:26 read.363


20090 09 01 수레바퀴 아래서 - Herman Hesse


1.
그가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온갖 뛰어난 힘과 인물에 대한 끊임없는 시기와 모든 비범한 것. 자유로운 것. 세련된 것. 정신적인 것에 대한 질투에서 비롯되는 본능적인 적의(敵意)이며, 이와 같은 것도 역시 이 고을 사람들과 공통된 점이었다.




2.
그럴 때면 그는 학교도 시험도 그 외의 모든 것을 초월해서 보다 더 높은 세계를 꿈꾸고 동경에 잠기는 것이었다. 한스는 볼에 살이 찌고 마음씨 좋은 친구들과는 아주 달라서 자기는 장차 뛰어난 사람이 되어 언젠가 한번은. 속세와는 동떨어진 높은 곳에서 그들을 굽어보게 될 것이라는 행복감에 젖었었다. 지금도 그는 이 작은 방안에 자유롭고 서늘한 공기만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숨을 깊이 들이 마셨다.



3.
자연이 만든 그대로의 인간은 측정할 수 없이 불투명하고 불온하다. 그것은 미지의 산으로부터 흘러 떨어지는 분류이며 길도 질서도 없는 원시림이다. 원시림이 잘리고 정리되고 힘으로 제어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학교도 태어난 그대로의 인간을 붕괴시키고 굴복케 하여 힘으로 제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학교의 사명은 윗사람에 의하여 시인된 원칙에 따라 자연 그대로의 인간을 사회의 유용한 일원으로 만들고, 마침내는 병영(兵營)의 주도 면밀한 훈련에 의하여 최후의 완성을 보게 될 각종 성질을 깨우치게 하는 일이다.

4.
하일너는 천천히 팔을 펴서 한스의 어깨를 붙잡고 서로의 얼굴이 아주 가까워질 때까지 한스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나서 한스는 갑자기 상대방의 입술이 자기의 입술에 닿는 것을 느끼고 무어라 말할 수 없이 놀랐다.
그의 심장은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답답증으로 들먹거렸다. 이처럼 어두운 침실에 함께 있는 것과 이 돌연한키스는 어떻게 보면 모험적이고 신기하고 또 무섭고 위험스러운 일이었다. 이 현장을 붙잡힌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조금 전에 하일너가 운 것보다도 이 키스는 다른 아이들에게는 더욱 우습고 수치스러운 일로 생각될 것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만 피가 세차게 머리 위로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가능하다면 도망치고 싶었다.


5.
한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우정의 의무와 공명심과의 싸움에서 졌다. 그의 이상은 바로 두각을 나타내고, 시험에서 이름을 올려 일역을 해내려는 것으로서, 낭만적인 위험한 행동을 하려는 것은 아니였다. 이리하여 그는 괴로워하면서 한쪽 구석에 틀어박혀있었다. 아직은 뛰어나가서 용기를 나타낼 수도 있었으나 그것은 점점 곤란해졌다. 그리하여 한스는 어느 틈엔가 자신도 모르게 하일너에 대한 배신이 행동화되어있었다.


6.
그 정열적인 소년은 후에 더욱 여러 가지로 천재적인 업적과 방황을 거듭한 끝에 인생의 고뇌에 의해서 엄격하게 단련되어 큰 인물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의젓하고 당당한 훌륭한 인간이 되었다. 뒤에 남은 한스는 하일너의 탈주를 알고 있었으리라는 혐의를 벗지 못하고 그로 인해 선생들의 호의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선생들 중의 한 사람은 한스가 수업중에 몇 개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을 때 이렇게 말하였다.
" 왜 너는 네 훌륭한 친구 하일너와 함께 가지 않았느냐? "
교장도 이제 그에게서 손을 떼고 마치 바리새인의 위선자가 세리(稅吏)를 보는  것처럼 경멸에 가득찬 동정을 가지고 옆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기벤라트는 이미 생도의 수에 들지 않았다. 그는 지금 나병 환자에 속해 있었다.


7.
아마도 그 동정심 있는 복습 지도 교사를 제외하고는 좁은 소년의 얼굴에 떠오르는 넋을 잃은 미소 뒤에 하나의 소멸되어가는 영혼이 번뇌의 익사 상태에서 불안에 떨면서 절망적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을 알아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8.
엠마는 울타리 너머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스는 수줍은 듯이 그러나 정답게 그녀의 손을 잡고 약간 힘을 주어 쥐었다. 그녀가 손을 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 한스는 용기를 내어 처녀의 따뜻한 손을 상냥하고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그래도 그녀가 여전히 가만히 있자 그는 그녀의 손을 자기의 뺨에 갖다 댔다. 스며드는 듯한 쾌감과 야릇한 체온, 행복한 피로가 그를 에워샀다. 그의 몸 주의의 공기는 미지근하고 남풍과 같은 습기로 차 있었다. 그에게는 이제 길도 뜰도 보이지 않았고, 다만 코앞에 있는 그녀의 흰 얼굴과 검은 머리카락의 흐트러짐만이 보일 뿐이었다.


9.
사과 나무 밑 젖은 풀밭에 드러누웠다. 온갖 불쾌한 감정과 괴로운 불안과 걷잡을 수 없는 생각 때문에 잠 들 수가 없었다. 그는 더럽혀지고 모욕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어떻게 해서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아버지에게는 뭐라고 말할까? 내일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 그는 영원히 쉬고 자고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완전히 의기 소침하여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머리와 눈이 아팠고, 도저히 일어서서 더 이상 걸어갈 기운조차 없어져 버렸다.
갑자기 뒤늦게, 눈깜짝할 사이에 밀려오는 파도와도 같이 조금 전의 환락의 비말(飛沫)이 되돌아왔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고 멍청히 음송해보았다.

오, 내 사랑하는 아우구스틴
아우구스틴, 아우구스틴이여.
오, 내 사랑하는 아우구스틴
모든 것은 이제 끝장이다.

10.
구둣방 주인은 묘지 문을 나서는 프록코트를 입은 사람들 일행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가는 놈들도 한스를 이런 지경으로 만드는 데 조력한 거야."
그는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 뭐라고? "
기벤라트는 놀라서 펄쩍 뛰며 구둣방 주인을 의아스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천만의 말씀. 도대체 그것을 어째서?"
"진정 하십시오, 기벤라트 씨. 나는 단지 학교 선생들을 말했을 뿐입니다."
"어째서? 도대체 왜?"
"아니, 이젠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요. 당신이나 나나 아마 이 아이를 위해 여러가지로 소홀한 점이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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