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의 생일을 맞이하는 눈동자가 붉다. 우냐고 물었더니 답이 없다. 손바닥만한 초코파이 위에 마트에서 몰래 들고나온 얇은 초 두자락을 심었다. 나무처럼, 얄팍한 지면을 딛고 일어서는 생명체처럼 빵속에 박혀있는 두개의 초.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스무살이라면 12시 초침이 숨넘어가듯 깔딱하며 지나가는 순간. 육체와 정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물리적인것이든 비 물리적인것이던 간에- 동시에 서로를 끌어당기며 폭발할것 같다고 생각했으니까. 열여섯의 여름에 스무살의 여름을 동경하고, 열아홉의 불안한 봄 속에서 완전체로 다가설 스무살의 봄을 기다렸다.
" 별거 아니네. "
오랫동안 열기에 노출된 초가 반토막으로 줄어들었다. 버석버석한 미소를 입가에 남겨놓고 빵을 입안으로 쑤셔넣는다. 카카오 80이 더 맛있는데. 마지막 한톨까지 쩝쩝 먹어치우며 투덜거리는 모양새가 얄미워 손등을 찰싹 두들겼더니 퉁퉁부은 눈이 바늘귀처럼 가느다랗게 찌뿌려진다. 포장을 뜯지 않은 파이를 코 앞으로 들이밀었더니 다시 펴지는 얼굴.
" 생일 축하해. "
한번 더 . 가느다랗게. 얇고. 잘 단련되지 않은 마음을 반만 넣어놓고 이야기했다.
삐걱삐걱대는 놀이터 그네에 노을이 닿아 발그스름한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야트막한 저녁의 공기가 슬며시 잠겨들어 온다. 축하분위기치고 참 을씨년 스럽네. 또 다른 과자봉지륵 바스락 뜯으며 좋지도, 싫지도 않다는듯 무미건조한 기색을 되풀이한다. 나는 그게 마음에 안들어서 오르락내리락 꿈틀하는 과자봉지를 빼앗아 내 가방속에 우겨넣었다.
" 밥 먹으러가자. "
" 밥 싫어. "
" 그럼 술 마시러 가"
과자 말고 밥. 밥 말고 술. 관련없는 공식의 발전. 이렇다 할 반응없이 까딱까딱 휘청이는 그네에서 엉덩이를 뭉기며 일어난다. 움직임에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던 반토막 거지 초가 모래마닥으로 곤두박질 친다. 그것에 이유모를 내 마음이 알싸하게 동요한다. 같이 떨어진 모자를 줏어 대충 모래를 털어내곤, 끈끈한 머리에 걸쳐놓으며 그가 말했다.
" 그냥 안갈래. "
" 왜? "
" 연습이나 하러 갈란다. "
" 생일인데? "
" 생일이 대수야? "
" 스무살 생일이잖아. "
흐하하. 관절처럼 우둑우둑 웃음이 분절되어 터진다. 오랜시간 쭈그려 앉아있느라 시큰시큰 거리는 무릎을 쓰다듬으며 괴상한 반응을 불만스레 지켜본다. 아무렇지도 않다 했던것들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낸다.
하루만에 80리는 더 멀리 뛰어가버린것같이 달싹거리고, 현기증나고, 피로한 뒷모습. 어중간한 또래 남자아이들처럼 핸드크림같은걸 챙겨 바르는 타입도 아니라 손등은 허옇게 갈라져 있다. 격렬한 신체의 움직임에 삐즉삐즉 흘러나오는 땀들이 대기에 응고되어 까만 티셔츠에 드문드문 자국을 남겨놓았다. 에너지가 빠져나간 젊음의 자리는 노인보다 더 늙어버린 허허벌판이다. 조심스럽게 등쪽의 얼룩을 만져본다.
" 샤워해야 겠다. 너 "
" 같이 할까? "
별거 아닌, 의미없는 농담에 삐쭉삐쭉 고드름이 들어차있는 내 신경이 몹시도 푸석푸석당겨진다. 대화의 시간은 과거로 돌아가 기억을 상기한다. 인과관계를 따진다면, 몹시도 어색하게 뒤틀려질 단어. 주절주절 늘어놓기도 귀찮고 짜증난다.
" 너, 내가 뭔지 알면서도 그러냐? "
봄과 여름을 뒤섞은 밤의 공기가 뒤틀린다. 반질하게 닦아내기 전 창문처럼 노숙한 먼지를 뒤집어쓴 눈동자가 피로함으로 뒤덮인다. 인지하지만, 원하지 않는 것이다. 돌출된 길의 돌을 피하는 공허함이 가득한 눈. 그곳의 세계엔 나도 없고, 이곳도 없다. 그는 있을까? 살면서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느낀적은 없는데 이 눈을 보면 감정의 마지노선이 깎아놓은 톱밥마냥 한톨씩 털어지며 허전해진다.
" 배고파. "
" 숙소에 밥 있을껄. 아줌마 낮에 왔다갔어. "
모래에 처박혀있던 초 한개비에 붙어나온 알갱이 하나를 털어내며 대강대강 대꾸하는 그의 하얀 목덜미가 보인다. 건드리지도 않았던 심지가 달아오른다. 급박하게 밀려오는 허기진 굶주림. 내 시선을 느낀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 아니, 그 배 말고. "
더이상 동요를 숨기지 못하는 미간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 매사 그런식이지? "
" 매사? "
" 항상. always."
" 내가 뭘."
" 나 생일이야. "
" 생일이 뭐 대수냐며. "
" 너 하는거 보니까 대수로 해야겠어. "
형한테 너가 뭐냐. 라고 하니 개소리하는 인간은 형으로 안키워. 란다. 귀여운 새끼, 178cm만 아니였으면 발톱부터 정수리에 있는 솜털까지 하나하나 씹어먹을텐데. 사랑스럽다. 잡아먹고 싶다. 근데 안된다. 다 먹어치우면 더이상 볼수가 없으니. 그래서 오지은누나가 사랑은 홧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단련된 능숙함으로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아직은 덜 여문 소년의 어깨. 생장의 기록이 잘못된게 틀림없다. 이런 마른 들꽃같은 생명체가 스무살일리가 없다. 달아오르는 감정이 땀처럼 찐득하게 배어나온다.
" 계란후라이 오십개 정도 먹으면 괜찮겠다. 어린애들을 동시에 먹으면 돌아가지 않을까. "
" 뭔 개소리야. "
" 나도 스무살 하고 싶다고. "
지나가버린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열여섯의 나도. 열일곱의 나도. 열아홉 다른 공간에 있었을 너와 나도. 원하지 않는 그 흐름속에서 더 진해지기도 더 옅어지기도 한다.변하지 않는것을 원래부터 없다. 그점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나. 내 인생은 고루하다.
영원한것을 믿는 순진한 구석의 어린아이라면 돌진할때에 뒤를 쳐다볼 필요성을 못느끼니까 걸음이 쉽다. 그러나 나는 걸어가기 전 뒤부터 돌아보고 만다. 돌아오지 못할테니까, 시작이 어떤것을 의미하는지 안다. 밀려오는 두려움, 그것을 통제하지 못한 나의 어린 마음은 진담도 농담처럼 배를 갈라놓고, 내장을 드러내고, 모든게 쉬운것처럼 그렇게 그렇게.
이건 상처받기 쉬운 인간의 고질병이다.
" 늙은이처럼 말하네. 꼴랑 스물한살이면서 "
" 자꾸 형한테 개길래? "
" 하하하. 미치겠다. 그런건 어서 배우냐? "
왜 형이고 난 너야? 선생님의 지루한 판서에 딴지를 거는 못난 안경쟁이처럼 녀석의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딱히 기분이 언짢은것도 아닌데, 불쾌한척을 해야 먹힐거같아. 시덥지도 않은 찡그림을 덧붙였더니,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구겨진 이마를 다림질 하는 시늉을 하며 중얼거린다.
" 형이고 넌 너니까. "
보이지 않게 바스라지는 입김이 턱끄트머리에 그렁그렁 맺힌다. 억지로 비워놓았던 공간을 채워넣는 구름같은 존재감. 벅차다. 감당하기 어렵다. 어두침침해지는 놀이터의 난간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그와의 거리를 넓혔다.
보이는건
침잠하는 오후의 끄트머리,
조각나는 나무의 그림자.
보이지 않는건
까만 눈동자.
모자아래로 삐쭉하게 튀어나온 머리카락.
통통하게 부은 눈두덩이.
가느다란 귓바퀴.
생각에 사로잡힐때 단단하게 다물리는 아랫입술.
보이지 않는것이 보이는것을 압도하고 만다. 어처구니 없게도.
스스로 피해버린 자리, 그의 영역속으로 나는 다시 돌아간다. 그리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천천히 시신경속에 쌓아둔다. 이것은 나의 장기기억에 들어찰 것들이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모든것들이 변하게 되었을때. 필요할때마다 거울을 닦듯이 하나씩 꺼내에 살필것이다. 서늘하고 어린 눈동자를 가진 스무살의 소년. 운동화에 살캉거리는 모래를 밟으며 웃고있던 그 얼굴도. 다른 이가 아닌 나만이 가질수 있는 기억이다.
마른 행복감이 젖어버린 감정을 훔치고 스친다. 어린애처럼 녀석의 손을 잡고 팔랑팔랑 뒤로 흔들며 웃었다.
" 생일 축하해. 진짜 많이. "
" 고마 좀 축하해싸라. 별것도 아닌거 가지고. "
쑥쓰러운듯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주춤 빼놓으며 맛없는 투덜거림을 또 한번.참지 못한 내 이마가 꿈틀거렸다.
" ....왜. "
" 아침에 눈 떠서 밥 쑤셔넣고. 연습실가서 연습하고 밥때되면 또 밥 쑤셔넣고. 연습하고 배고프면 또 쑤셔넣고 새벽까지 연습하고 피곤에 쩔어서 집에 오자마자 퍼자고. 이놈의 데뷔는 언제 될런지 꺼내놓고 감감 무소식. 정신 멀쩡할땐 그 걱정에 속 타들어가고. 열아홉이나 스무살이나 하나 다를거 없지? 지랄같긴 해. "
" ............. "
" 그래도 넌 운이 좋아. 하고싶은거 하잖아. 그게 중요한거야. 아무 장식 안해도 반짝반짝한 스무살에 넌 네가 제일 좋아하는거 하잖아 그게 중요한거야. 그러니까 소중하게 간직해야해. "
숨을 참고 고개를 들어 더 높은곳에 메달려 있는 가로등을 바라본다. 크림색의 전등이 꿈처럼 녹아든다.
" 내가 널 사랑하는것 만큼. "
달아오를것 같았는데, 오히려 가라앉았다. 천천히 열기가 식어간다. 어깨를 지나 마른 팔뚝을 지나 하얗게 부르튼 손을 붙잡았다. 단순한 표피의 부딪침에 벌어진 심장이 꿈틀거린다. 아파. 당연한 고통을 움켜잡으며 비틀거리는 나. 이것도 익숙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젠 쉽다. 그를 향해 빙긋 웃었다. 하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 형. "
붙들린 손목을 비틀어 빼낸다. 두 손을 천천히 들어 나의 얼굴을 붙잡는다. 내 뺨을 감싼다. 뭉근한 따뜻함이 스며든다.
너와 내가 공유한 시간의 소용돌이. 폭풍우를 뚫고 지나가 도달하게 될 중심부엔 바람의 흔적따윈 없다. 미동조차 없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고요한 적막. 그 속에 벌거벗은 감정이 누워있다. 부끄럽지도,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다. 도망가지 않고 그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아프지가 않았다.
" 이젠 알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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