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현자

아이 2013.06.24 16:21 read.74

1.
賢者, 가 되고자 책을 읽고 인간에게 귀를 기울이고 밥을 먹지만 완성에 이르는 길은 불가능한것 처럼 보인다. 답답함이 치밀어오를땐 내가 아닌 타인에게 해답을 구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질문에 대한 답지를 차곡차곡 모으는 행위로 '현자'를 꾀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위로를 대신한다. 그렇다 이것은 다른것도 아닌 자기 위로에 불과한것이다. 현자가 되는것은 얼마나 난해한 일인가. 그 어스름한 이명이 비춰오는 경계선에 손가락 끝을 미묘하게 올려놓으면서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으로 마음을 쏟아내고 있다. 그리하야 설프게 쌓아놓은 비물질들이 시절을 무시한 공간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속절없이 바라만 보고 있다. 그렁그렁한 회한을 눈두덩이에 가득 매달아 놓은채.



+ 입버릇처럼 '참는다. 참아내고 있다'라는 말을 반복하는것에 관하여. 누구를 위해 참는것인가 묻는 질문에는 '나를 어엿비 여기는 부모를 위해서' 나 '최소한의 금전이 필요한 인생을 위하여' 따위로 이유를 틀어막지만. 실질적으로 나의 부모는 나에게 참는것을 요구한적이 한번도 없다. 오히려 참아내고 있는 나의 불편함을 못내 안타까워 하며 '네가 원하는것을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삶의 목적을 환기시켜 주실뿐. 그러니 내가 참는것이 부모님 때문이라는 핑계는 이제 고사해야 한다.

나는 어째서, 왜, 참아내고 있는것인가. 아니 '참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것일까. 일분 일초를 갉아먹는 이 순간을 왜 견디고 있는것일까. 슬프고, 외롭고, 피곤하다. 온전하게 나를 바라볼수 있는 골방이 하나 있었으면. 파고들어 나의 손바닥을 바라볼수 있는 어두움이 하나 더 있었으면. 더이상 어설픈 변명으로 얽어막는 얼굴을 잘라낼수 있는 '실질'을 가질수 있다면 나의 괴로움은 반할이라도 줄어들수 있을것이다.

내 혐오가 던져진 유전자의 '뒤틀림'이 같은 혈관을 타고 흐르고 있다는것을 안다. 거부했던 많은 특성들이 고스란히 나의 세포에 기록되어있다. 태생은 그런것이다. 내가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있을때 외로움과 폐쇄에 뒤틀린 자아를 추스리지 못한다면 나는 그와 똑같은 길을 가게 될것이다. 그러한 미래를 상상함이 너무나 끔찍하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끊임없이 되뇌인다. 만월이 뜰 무렵 마음을 내려놓는 반인반수의 탈주로 '스스로'를 잃고 싶지 않기에 나는 끊임없이 뇌까린다. 나는 큰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더 강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




+
어째서 끝은 슬퍼지는 것일까. 어째서.






2.
' 나의 마음을 너에게 얹어놓을 무렵. 나에게서 비롯된 어두움이 너의 발끝에 해일처럼 말려올라가는것을 바라보며 작은 기쁨을 누렸다. '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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