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26

admin 2021.04.26 21:52 read.27

 

 

 

4월 초입에 응급실행으로 여러 사람의 심정을 철렁이게 만들었던 (..........) 나의 병명의 정식 명칭은 해면상혈관종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7107&cid=51007&categoryId=51007)

새벽 응급실에 실려가고 이후 몇일동안 의식이 오락가락 하다가 일반병실 올라갔던 날 점심 즈음에 겨우 현실세계로 돌아오긴 했는데. 문제는 그 이후에 뇌기억 능력이 감퇴되었다는것이다. 몸이 늘어지는건 발작증세에 쎄게 때려박은 약들 때문인거 같고. 지금은 절반정도 500mg로 용량을 바꾸었더니 좀 사람사는것같이 돌아오는듯. 퇴원하고 난 후 맨 처음 바깥으로 외출했을때 (너무 못견디겠어서 잠깐 앞에 커피라도 사 마시러 가고 싶다고 남편및 엄마를 열심히 졸라댔...) 하나씩 내딛는 발걸음 마다 이것이 현실 세계인건지 꿈인건지 아리송한 느낌이었다. 이런 재활치료를 몇번 반복하니 이제 겨우 직립보행에 익숙해 지는것 같다는.

 

하지만 머릿속이 멍한 몇주는 나의 시간에서 통째로 도려내지는 기분이다. 그저께엔 김떡을 보러오신 어머님이랑 대화하던중 내가 조리원에서 퇴소하고 난 후 집에 오셨었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나는 순간 그런 일이 있었던가? 라는 생각에 멍 해져버리고 말았.. 단번에 기억이 안나고 무슨 꿈을 꾼것마냥. 애기 보러오셨던적은 있었지 라고는 확신하는 기억이지만 그 외엔 도대체 무슨 대화나 무슨 행동을 했는지는 생각이 안나는것이다. 나는 내 병이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퇴원하기 전까지는 육체의 고통이나 보행 및 언어생활의 장애가 찾아오지 않았으므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무시하기 힘든 일상의 간극을 매 순간마다 난감하게 마주하는 상황을 겪고있다. 나는 응급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고 깨어났을때 정상적인 상태가 안될수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당연히 이 얘기는 정신이 나간 내가 아닌 남편이 의사에게 들은 얘기다. 새벽에 눈알을 뒤집고 쓰러진 나를 보고 손을 벌벌 떨면서 119를 부르셨던 아부지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었고. 발작 증세로 손발이 묶여서 중환자실안에 누워있는 내 모습을 보고 이런 얘기를 듣게된 남편은 또 어떤 기분이였을까. 나중에 동생이 얘기하길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처음엔 참았다가 나중엔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나는 후일담을 하나씩 들을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무어라 말을 할수가 없었다. 그 이후에 남편은 내가 혼자 있어도 안되고 어딘가에 혼자 (심지어는 동네 앞 슈퍼라도) 가는것도 안되고. 아이를 안는것도 안된다고 하고 무조건 절대 안정을 강조했다 (그때 겪은일들을 돌이켜보면 당연한것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해면상 혈관종에 적합한 의사가 있는 병원을 계속 찾았다.

처음 응급으로 실려갔던 부천 ㅅㅁ 병원의 신경외과 주치의는 수술을 무조건 해야한다고 하고 (그것도 지금 당장) 사유를 물어보니 자기의 스케줄이 맞는게 지금밖에 없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늘어놓았다는

그래서 검사 기록을 싸짊어지고 뇌질환에 유명하다는 분당서울대병원의 무슨 명의 어쩌고 하는 아저씨를 찾아갔는데 (졸라 멀어...)

MRI 사진을 훅훅 훑어보더니 수술은 하고 싶으면 하고 (불안하면 하라는 얘기) 할거면 자기 병원 말고 부천의 저 아저씨한테 가서 하라고 ㅋㅋㅋㅋ 뭐임

여튼 본인의 의견은 지켜보자는 쪽으로

자기한테 진료받는걸로 하는거면

1달뒤에 CT 다시 찍고 얘기 다시 하자는?

 

그리고 지금 먹는 약을 도저히 바꿀수가 없는건지 물어봤는데 그 약밖에 없다고 해서

똑같은 약으로 1달치를 더 처방받았다. 10분? 정도 진료를 들었는데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준다기 보단 그냥 저냥한 느낌

 

거리상의 문제도 있고 다른곳도 알아봐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서 신촌 세브란스에갔다

거기에 ㅈㅈㅎ 교수님이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갔ㅇㅁ

뇌종양쪽에서는 이름값이 있다고 하시는데 해면상 혈관종이 대표 타이틀은 아니라는

여튼 인터넷에서 해면상 혈관종 진료 또는 시술 이력이 있는 사람 위주로 서치했더니 이 아저씨가 잡힘

평일 오전 진료로 예약했는데. 역시 대학병원의 악명높은 시스템 (초진 등록 포함)에 따라

진료 시작하기 1시간 전에 도착했는데도 제시간에 진료를 못받았다. 앞에 대기만 10명은 넘어가는듯

기다리는거나 복잡한 길찾기 도떼기 시장같은 인파들의 범람에 빡쳤지만

진료는 이제까지 본 아재들중엔 제일 만족스러움

가져간 검사 사진을 보고 세부적으로 설명을 해주시는것이 무척 괜찮았다. 기다린거나 돈쓴게 안아깝게 느껴지는 유일한 의사님 이였음 ㅋ

 

나는 태생적으로 뇌에 혈관기형이 있었는데. 이런것이 살면서 파열이나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더러 있음 (기형이 있으나 없이 그냥 평이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음)

극도의 과로 또는 출산의 영향에 따라 혈관 파열이 일어나고 그 출혈에 따라 급성 발작이 일으켜서 뒤로 넘어가게됨

나의 뇌 사진에는 그 부분에 과거 출혈의 영향은 없는것같다 (예전에 출혈이 발생되었다면 - 그것이 인지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에도- 검은 흔적을 남기지만 그런것이 없음)

아마 출산으로 인한 호르몬 변화 또는 어떠한 긴장 과로 (이것은 조리원에서 잠을 1시간 자는지 마는지 했던 과거지사를 반성해야하는 부분일지도..)로 발현되었고

급성 발작으로 응급실에서 그 생 난리 버거지를 치고 살아남게 된것임

 

운이 좋아서 출혈이 발생된 부분도 수술 하기엔 무리가 없는 부분 (뇌는 문제가 생기는 포인트가 어딘지에 따라 뚜껑열어 손댈수가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되는 존나 골아픈 기관임) 이고

출혈이 발생될 위험성이 두렵다면 그 부분을 수술해서 제거하는것은 가능하나 보통 한번 터지는 경우엔 수술하지 않음

(한번 터지고 난 이후엔 재 출혈이나 발작 가능성이 높지 않고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음)

만약 두번째 터지게 되더라도 예후가 그렇게 나쁜건 아니니까 현재로서는 수술을 급하게 권장하거나 서두를 필요는 없고

예후를 보는쪽으로 하자고 하시는

 

처음 진료한 병원에서 꼭 수술해야한다고 주장했다고 일러바쳤(?) 더니 선생님이 도리어 '수술하자고 하던가요?'라고 되물으심

(시발 그럼 그새끼는 왜 수술하자고 한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부천 ㅅㅁ 병원 신경외과 박.... -_-)

그리고 지금 먹는 약도 너무 용량이 커서 자꾸 체력이 늘어지거나 잠이 쏟아지는 증상을 겪어서

약의 용량을 좀 줄일수 없는지도 물었더니 기존 1000mg 에서 500mg로 줄일수 있다고 처방전을 바꿔주시고

약 먹는것도 3~4달후에 외래 다시 보고 끊을지 말지를 다시 협의하자고 하심

그리고 머리 사진을 또 찍으라는 둥 이상한 외래 강요를 안해서 좋았다

1년후에 MRI도 상황봐서 찍자고 하심. 포인트 별로 명쾌한 답을 주셔서 몹시 감사하였음.

 

신촌세브란스 진료가 몹시 만족스러운 덕분에 분당 서울대 병원 다음 외래는 그냥 패스하는걸로.. (그 먼거리를 감수하고 재 진료를 받을 메리트가 없다는 결론)

 

다른 병원도 더 가볼까 하는 남편의 의견도 있었으나 (부평 ㅅㅁ 병원이 뇌질환 쪽에는 유명하다고 해서)

그냥 그것도 패스하기로함. 현재로서는 7월에 잡힌 외래까지는 처방받은 약을 열심히 먹는쪽으로

 

처음에 1000mg먹던것을 500mg로 줄이는 효과가 단번에 느껴지진 않았지만

뽕맞은 벼 마냥 축 늘어지던 신체 세포들이 나름의 활기를 점차 점차 찾아가고 있다 바꾼지 5일만에 더 괜찮아짐.

바깥에 나갈때 걷는 걸음이 뽕맞은 멍멍이에서 벗어나서 다행이다 좀더 또렷한 시야 확보와 넓은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발작이 일어나기 몇일 사이의 기억은 휘발되어 찾기가 어렵고 가끔 퍼즐 조각에서 몇개 놓친것같은 기억들이 있다

스케줄러에 26일 전화 라고 내가 메모를 해놓았는데 그게 뭘 의미하는건지 도대체가 파악이 안되서 카카오톡 창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감이 안잡힌다

지갑에서 카페 칸타타의 스탬프 쿠폰이 나왔는데 도대체 여길 언제 갔는지가 바로 떠오르지가 않는것이다 아 닝기미. 이것도 한참 생각하다가 롯데 백화점에 상품권 변경하러 갔다가 사먹은걸 기억해냈음.

19일에 분유 마감이라고 적은건 또 뭐지. 이건 아무리 쥐어짜도 안떠오른다.

이런식으로 기억의 재활치료를 거듭하는 중이다. 하지만 스케줄러나 내가 써놓은 어떤것들의 구멍을 발견할땐 어찌할바를모르겠다.

 

2.

그러니까 더 메모를 세부적으로 자잘하게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깨닫게 되는것이다.

 

병원에 갔다온 기록들따위를

20일은 출산후에 자궁상태를 보기 위해  출산병원을 다시 갔는데. 이 의사 아줌마는 정말 마지막까지 사람을 빡치게함...

목동ㅈㅇ에서 처음 여기로 병원을 옮길때 초음파 상 난소 혹을 발견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 나는 클리어하게 설명했고 의사는 기록하는 액션? 리액션을 했기에

양당사자가 다 아는거라고 인지하였으나

이번 초음파에 난소혹을 발견하고ㅋㅋㅋ 이 사람들이 단체로 이건 뭔가 라고 내부회의를 하면서 초음파 검사실에서 서로 회의들을 함

그러고 진료실에서는 난소 혹이 있으셨네요 이러면서 이걸 마치 처음 접했다는 식의 맨트를 날리는 이 돌팔이 아줌마...아 시발 ㅋㅋㅋㅋㅋㅋㅋㅋ 막판까지 개빡치게함.....

목동병원에서 기형종이라 필히 수술은 해야한다는 소견을 밝히셨으므로

나는 수술은 해야 한다는 부분은 인지했고

이 아줌마한테는 수술의 시점을 답변 받고 싶어했으나 저따위 말을 하니까 뭘 더 할까 싶은 생각이

여튼 남편은 진료에 필요하므로 나의 뇌 발작부분에 대해 나름의 주치의(....)에게 브리핑을 하였고

그 의사선생은 뇌 수술을 할거면 난소 부분도 마취하는김에 같이 하는게 좋겠다 단 지금 말고 연말정도

뭐 이런식의 의견을 피력했음

그리고 몇달뒤에 외래에 와서 다시 체크해라 뭐 뻔한 소리로 마무리했는데

대충 예약은 하고 왔으나 다시는 이 병원에 와서 수술을 하던지 뭐 이런걸 연장하진 않을거라는것이 나와 남편의 공통 결론이였음.

아 정말... 내가 병원을 선택한것이 등신이고 멍청이였으니 누굴 탓하겠냐만은

저따위로 진료하면 누가 당신을 신뢰할수 있을까요 라고 되묻고 싶어지는 뭐같은 의사선생이였음

 

난소수술은 세브란스 가는김에 거기 산부인과 예약해서 해볼까도 싶은 뭐 이런 상태임.

 

아 그리고 간김에 자궁검사를 받았는데 암검사는 정상이였다 이건 뭐 예상된거였지만.. ㅋ

 

 

3.

내 상태도 정상이 아니고 육아는 여전히 전쟁터이므로 남편은 급하게 산후도우미 이모님을 수배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참으로 많은 혜택이 있는데 그중에 산후조리 도우미에 얼마간의 돈을 지원해 준다는것이다 (서울시에서는 사은품도 준다. 우린 이걸로 유모차 받았음 ㅋㅋ 생각보다 좋은 퀄리티에 모두 놀람)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2주간 오셨는데 말이 몹시 많으신거 빼고는 (.........) 친절하시고 전문적이신데다가 몹시 부지런하셔서 편했다는. 

코로나 시기에 다들 조심하는데 그 이모님이 자체적으로 마스크를 계속 착용해주셔서 몹시 좋았음.

 

내가 아프다는 이유 (그리고 발작에는 과로가 가장 큰 이유)로 남편과 엄마나 야간 수유에 많은 에너지를 혹사당했고 또 혹사당하는 중이다

새벽 1시까지는 내가 어느정도는 할수 있을거같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나 우리 여사님에게 묵살당함. 무조건 안정이라고 주장하시는데

내 입장에서는 밤에도 잠못자고 애기 밥주시고 낮에는 집안일에 애 봐주시고 빨래에 기타등등에 혹사당하시는걸 보는데 맘이 편하겠는가 가시방석이 매 순간이다.

나는 앉아서 애기 수유하는것 정도는 할수 있는데

김떡이 앉아서 않아주는 꼴을 싫어해서 ㅋㅋ (꼭 일어서서 본인을 달래줘야하는 고급진 공주님...ㅋㅋ..)

가끔 서있으면 그것때문에 엄청나게 욕을 먹는다 ㅠㅠ.....

지난번엔 새벽에 너무 곤히 자구 있어서 차마 못깨워서 내가 수유했는데 그걸로도 정신 못차렸다고 욕먹음..ㅠㅠ

여튼 이 몸뚱이가 빨리 돌아와야 이 모든사람들의 고생이 끝나겠지 ㅠㅠ 매 순간이 죄인이고 미안할 뿐이다

 

 

4.

매일매일 많이 먹고 푸지게 응가 하고 푸욱 잘 자는 김떡은 하루가 다르게 포동포동해지고 키도 커져서

지금은 5.3kg가 되었다. 2.9kg에 나와서 한달 좀 넘는 시간동안 5kg가 넘어가는 기록을 세움 ㅋㅋㅋㅋㅋ

민트옷을 입으면 민트돼지 ㅋㅋ

핑크옷을 입으면 핑크돼지가 됨ㅋㅋㅋ 우유를 먹다 흘리면 목사이 주름에 들어가는 광경을 목격하기도함 ㅋㅋ

그 포동한 볼을 앙앙 물어주고 싶음 ㅠㅠ 하루가 다르게 푸둥해지고 귀여워 진다.

김떡을 생각하면 이러저러한것들이 떠오른다

같이 여행가고싶은 생각이 제일 크다

가장먼저는 호수공원 산책

예전에 남편이랑 같이 다녔던 여행지들

거제도, 천리포? 어디에 있는 해안가 수목원이나

해안사구도 같이 산책하면 좋겠다

그것도 좋지만 신월동 집앞을 매일 산책하던 우리 코스가 있는데 거길 3식구가 유모차 끌고 밤산책 가고 싶다

집에 가고싶지만 지금으로선 ㅠㅠ 우리 여사님 집에 기생해야함

집에 가면 자신없다 ㅠ 김떡은 여사님 껌딱지가 되어버림 ㅋㅋ.. 내가 뭐 할때마다 울어 ㅠ 쳇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더 늦게 발견 되었더라면, 또는 치료 도중에 좀 더 운이 나쁘거나 안좋아졌더라면 지금 이 순간 참외를 먹으며 자판을 치며 망중한을 누리는 호사따윈 내겐 없었을 것이다. 김떡을 볼수가 없다. 김떡을 볼수가 없다고 시발 이게 말이 되는일이니? 한밤중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엉거주춤 다가왔을 불행이 한뼘의 차이로 내게서 벗어난 순간 나는 다시 소중한 것들을 찾을수 있었다. 이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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