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te

admin 2021.06.07 14:05 read.30

 






1.




" 네, X 상사입니다 "


피로와 사투하는 목소리가 퉁명하게 터져나왔다. 자판위를 바쁘게 뛰어넘는 손가락은 어깨에 걸쳐놓은 전화기에서 흘러나올 상대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손톱만한 침묵이 지나가고 낮선이의 말이 다가왔다.


" 접니다. "


일상적인 업무 전화는 '어디의 누구입니다'로 시작하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이렇게 짤막하고 노곤한 단답형의 소개는 흔하지 않다. 보편성이 무너짐과 동시에 의하함에 이마를 찌푸리며 수화기를 손으로 잡아쥔채 되물었다. 어디시라구요?  냉랭한 반응에 상대는 주춤하며 잠시 말을 잃은듯 했다. 주름진 이마를 손가락을 꾹꾹 누르며 짜증스레 되물었다. 몇번으로 거셨어요?

놀랍게도, 그가 낭랑하게 내뱉는 숫자들은 회선과 일치했고.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접니다'엔 어느새 허둥대는 흔적이 사라졌다. 그는 분명 이곳에,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제3의 인간이 확실하다. 누구세요? 라고 묻자 또 말이 없다. 이번엔 정말 쓸데없는 전화의 뿌리를 뽑아버리겠다는 마음으로 목소리를 꾹 구기고 쏘아붙였다. 할말 없으시면 끊습니다.


" 기억 안나십니까? "


이건 또 어드메에 처박힌 미친새끼인지. 조근조근한 투로 아는체를 하는 소리의 출처는 아무리 고막으로 걸러봐도 면식없는 이가 확실한데,  더이상 깊은 사고에 돌진하고 싶지 않은 나는 이것을 단순한 장난전화로 판단하고 털어내려 했다


" 죄송한데요, 제가 지금 업무중이라. "
" 내일 아침 이정표를 놓겠습니다. "
" 네? "
" 게이트요, 당신이 다시 나를 불러낸 이유죠. "
" 이봐요 그게 무ㅅ -"



뚝뚜- 신호음이 되직하게 터져나오는 수화기를 든채 황당함에 할말을 잃었다. 이런 허술한 시나리오엔 어린 아이들도 쉽게 휘둘리지 않을텐데, 사는게 팍팍하고 목구멍이 갈라지는 나같은 놈은 이렇게 허술하게 끌려가고 마는구나 싶어서






2.

지끈거리는 두통에 괴로웠다. 언제부터였을까, 이유를 알수없는 두통이 지속되었다. 마치 욱신거리는 생체기를 붙잡고 쌓여있는 시체더미를 넘어가는 군인의 걸음처럼 느리고, 미련하게.


평범한 일상속에, 평범한 사람은 평범하게 웃으며, 평범하게 시간을 떼우지만. 통증과 친구를 맺지는 않으며, 높은 빌딩위에 몸뚱이를 투척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같은걸 자리끼처럼 머리맡에 두고 살지는 않는다.

범람하는 인간의 틈새에서, 시큼한 인간의 냄새를 맡으며 코를 틀어막았다. 괴로웠다. 아침 8시의 지하철은 싱그러운 햇살로 묘사되는 상쾌함과는 거리가 멀다. 빠르고, 반복적이고, 침침하다. 그리고 두렵다. 부딪치는 인간의 물결과 그 안에 개미처럼 파리하게 짓눌리고 있는 불행한 육신을 지속하는 삶도.

미세하게 후들리는 더위와 함께, 간헐적으로 터지는 기계음이 열차의 도착을 알린다. 묵직한 다리를 두들기며 스크린도어를 향해 한발자욱 앞으로 다가갔다.

눈을 크게 떴다. 노오란 포스트잇 위에 까만 별 무늬가 작게 그려져있었다. 가슴이 철렁 주저 앉았다. 의미없는 장난전화가 던져놓은 깔그러운 덪에 나의 뒷다리가 덥석 물리고 마는 그 현실감, 겁박한 실제상황의 무게가.  

후들거리는 손으로 진동하는 전화기를 붙잡았다. 액정위에 떠있는 출처미상의 번호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절망했다. 이건 단순한 장난전화에 엮긴 에피소드가 아니였다.

" 알아보실줄 알았습니다. "


그 담담함에 기가 찰 노릇이였다.

가면을 천천히 벗는다. 노릿한 역광에 부신 눈을 부비며 상대의 얼굴을 살폈다. 근거리에 놓인 또다른 생명체의 육체로부터 뭉근한 더위가 피어오른다. 스치는 시큼한 땀냄새, 불쾌한 여름의 흔적을 느끼며 다시금 상대를 살폈다.

" 오래간만입니다. "

미친, 이라는 소리가 목구멍을 절로 비집고 터져나왔다. 너무나 평범하게 생긴 소년이, 너무나 일상적인 말투로 건네는 인사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정말 미쳐가고 있는걸까, 이건 쓸데없는 꿈이다. 손을 내밀어 그의 팔목을 붙잡았다. 검지손가락 아래에서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혈관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 이런걸 원하는거 같아서. "
" 뭐, 뭘 말하는거야? "
" 어린 남자아이, 심미적인걸 좋아하잖습니까. "


기가차게 사람의 취향까지도 간파하는 서비스라니. 낭랑하게 튀어나오는 말에 너무나 놀라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나의 반응을 보고 그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이마를 느릿하게 찌푸렸다.


" 이번에도 타이밍을 잘 못맞춘건가요? "
" ............. "
" 정말 어렵군요, 당신은 너무 변덕이 심해서. "


노곤한 감정이 선명한 지점으로 변화한다. 이건 꿈이리라. 꿈일것이다. 그렇지만 꿈 치고는 소년의 마른 어깨에 내려쬐는 조명이 지나치게 선명했고, 상투적으로 볼을 꼬집으며 오감을 더듬기엔 살아있는것들이 너무 많이 움직이고 있다는걸 무시할수는 없었다.


" 이번엔 믿어요, 제대로 마주하고 있으니까. "
" 이게 무슨.."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눈을 꾹 감고 귀를 틀어막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눈을 뜨면 모든것이 깨끗하게 돌아갈거라고. 더위에 헐떡이며 막힌 혼구멍이 쓰임없는 허상의 구렁텅이에 정신을 몰아가고 있는것이라고. 그러나 이마에 서늘하게 닿아지는건 또다른 누군가의 피부다. 눈을 떴다. 엄지손가락 한마디도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울만큼 가깝게 다가온 그의 두 눈동자가 묵묵히 나를 담아내고 있었다. 담담한 그의 말이 이어졌다.


" 현실의 괴로움에 사투하는 이들은, 피할곳을 마련하기 위해 숨어들죠. 그것을 갖고 있는 당신은, 이곳에 있는 인간들 중에 흔하지 않은 행운을 지닌 사람입니다. 당신은 고통에 가득차 비명을 질렀지요? 나를 부르지 않았습니까? "
" 말도안돼. "
" 이번엔 당신이 좀 더 버틴 이후에 저를 찾을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꽤 빠른 시간 내에 나를 불러서 좀 놀랐습니다. "
" ........ "
" 당신의 인내심이 짧은 걸까요, 아님 이곳이 지나치게 질척한 곳이기 때문인걸까요? "
" 미치겠네, 누가 뭘 불렀다는건지.."
" 여전하시네요, 그 미련한 솔직함은.  "
" 아 제발 좀. 헛소리 집어치우고. 진짜 나한테 원하는게 뭐에요. "
" 당신이 원하는것. "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자, 옅은 갈색빛의 눈동자가 연 노란 색으로 바뀌었다. 기이한 시각적 변화를 감지한 나의 등골이 오싹하게 굳어졌다.

빙긋 웃으며 다가오는 그가 검지손가락으로 나의 눈썹을 쓸어내렸다. 서늘한 감촉에 가슴언저리가 움찔거렸다. 실제하는 것들이 온통 솟구쳐 올라 경계를 허문다. 알수없는 낮선이로 끌려가는 이 강렬한 감각은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 두려움을 목덜미에 메달고 돌진하는 미련한 소처럼, 나는 알수없는 걸음을 떼어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가 이야기하는 괴이한 논리에 마음을 기울이고 있었다.


" 나는 당신입니다. 당신이 갖고 있던 원래의 것, 당신이 미루어 두었던 저 먼곳으로 부터 온 또다른 당신. 당신은 나를 잘라냈지만, 사실 당신은 처음부터 알고 있죠. 내가 어떤 존재인지. "
 

그가 나의 얼굴을 붙잡고, 천천히 입술을 맞닿는것을 아무런 저항없이 고스란히 받아버린다. 놀란 두 눈 너머로 맞은편 플렛폼에 서있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의 괴상한 얼굴이 보인다. 다 큰 남자와, 어린 소년이 입술을 부딪치고 있는 장면을 바라보는 경악에 가득찬 시선들이 내게 쏟아진다. 당혹함에 그의 어깨를 밀치며 도망가려 하지만, 그가 나의 손을 붙잡았다. 그와 동시에 얼음 위로 녹아내리는 살큰한 설탕처럼, 점점 그곳을 향해 미끌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3.
울고 있었다. 어디론가로 열려있는 골목 언저리에 서 있는 나는 분간할수 없을만큼 작았다. 작고 여린 팔 다리, 쉽게 침투당하고 쉽게 망쳐버린 어리고 어린 인간. 선택당할수 밖에 없는 삶을 고스란히 버티고 있는 시간 속의 유한한 존재였을 뿐이다.

 


" 이렇게 밖에 할수 없는걸까.  "



다리 한뼘은 더 큰 키의 그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반쯤 벗겨진 머리칼이 희끗하게 내려앉은 그는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있다. 나의 머리를 느릿하게 쓰다듬는 그의 손바닥엔 어린 소년이 갖고 있는 풋한 나무등걸의 향이 베어나왔다.

" 구제할수 없는 변덕쟁이라는걸 알고 있지만. "

심장에 번지는 고통은 언어로 구체화할수없을 만큼 끈적거렸다. 그런 괴로움을 표현하는 법이라곤 목구멍이 찢어질만큼 커다란 소리로 울어버리는것 외엔 터득한것이 없기에, 나는 또 울고 또 울었다. 그러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매케한 더위가 솟아오르는 아스랄트위에 놓인 맨다리가 고깃덩이처럼 발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 그럼 처음부터 거두었으면 되잖아요.  "
" 나에겐 그럴 권리가 없어요. 당신이 쉽게 도망칠수없는 자리에 놓여 있듯이. "
" 왜 하필 이곳으로 데려온거에요? "
" 내가 데리고 온게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 선택한거에요. "
" 나는 싫어요. 너무 싫어요. 이런건... "


작은 나의 몸이 가벼운 소리로 훌쩍 일으켜졌다. 나의 몸뚱이는 그의 품 안에 베개처럼 가만히 안겨있었다. 온 몸으로 번지는 뜨거운 기운에 숨이 막혔다. 이마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까슬한 언어의 조각이 귀가 아닌 피부로 파고든다.


"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


나지막한 숨이 정수리를 타고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작은 몸뚱이는 꿈틀거리며 그의 팔에 메달려있었다. 메케한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지난 시간의 기억, 그의 등을 느릿하게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이제 다시는 시작하지 않게 해주세요. 제발 이 고통의 사이클에 나를 방치하지 말아주세요. 누군가가 내 말을 듣고 있다면, 적어도 이 말에는 대답을 해주리라 믿었다.


칼날이 손톱끝을 파고들어 발그레한 핏물을 터트린다. 범죄를 저지르는 이가 그러하듯 숨길수 없는 찰나의 죄책감에 휩싸였다. 죽여버리고 싶다. 죽이고 싶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서 죽어야 하는걸까, 나는 이렇게 까지 애절하게 집착하는 인간은 아니였는데.


깊은 절망이 허무의 세계로 밀려들어온다. 그 범람한 세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으리란걸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렇게 이번 생애를 또 말끔히 비워버리기 시작한것이다. 그가 처음부터 말했던것처럼, 쉽게 그렇게 또 쉽게.
 

 

 


그가 내 앞에 다시 서 있었다.

" 또 이런 미련한 짓을. "


하얀 손가락이 느릿하게 다가와 나의 손가락을 하나씩 하나씩 열기 시작한다. 핏물 사이에 틀어박힌 녹슨 칼날의 끄트머리가 보였다. 그제서야 엄습하는 고통에 가슴이 터질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한다. 부끄러움을 감출수가 없어 그를 거세게 밀쳐냈다. 하지만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은채 나의 손바닥을 그렇게 어루만지고는 나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잘라버린 기억의 파편에서 노랗게 들뜬 새순이 자라기 시작한다.


" 그때부터 그랬던걸까.. "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를 바라보는 나의 가슴은 바람이 지나간후의 벌판처럼 정갈하고 깨끗했다. 덧없는 기억과 빛없는 감정은 서로 다른곳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더이상 지속할 의미가 없다는걸 깨달았어요."
"그건 누가 장담하는건가요?



 

 

 

4.

빙글거리는 무언의 과거는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의 몸뚱이는 수많은 인파의 한가운데 또다른 영겁의 형태로 존재한채 다시 그를 맞이하였다.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 수없이 맹서하고 또 다짐하였던 무심한 방식이 그림자 처럼 나의 뒷덜미에 쫓아오는것을 무력하게 응시하였다.



" 비현실이 현실에 유입되는 이유는 단 한가지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붙잡고 있는 현실이 허술하게 늘어져 있기 때문이죠. 다른 탓을 하지 마십시오, 이건 처음부터 당신으로 부터 유발된 사건입니다. 도망치고 싶으시다면 선택하면 됩니다. 자, 이곳으로 오시겠습니까?


신호가 끊긴 수화기 저편의 상대는 깨끗하게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을것이다. 그 깊은 관련성에 짐작할수 있는 모든 상황은 내게 명료하게 다가왔다. 이제 더이상 피할수는 없다.


문이 열렸다. 짭쪼름하게 번지는 기계음을 앞세우며 느릿하게 열리는 문 사이로 시커먼 지하의 대류가 흘렀다. 그 까맣고 까만 먼지 너머에 보이는 희뿌연 불빛은 꿈의 그것처럼 아득했다.

지하철이 정전되는건 꿈에서나 일어날법한 괴이한 일, 선택을 돌이킬수 있다는 꿈의 무한한 복구력을 믿으며, 미련한 나의 발은 조금씩 게이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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